바그다드 카페 - 사막, 사람이라는 오아시스
바그다드 카페 - 사막, 사람이라는 오아시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3.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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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그다드 카페' 한 장면.

어른이 되면 다들 직감하게 된다. 삶이라는 것도 점점 ‘사막화’가 진행된다는 걸. 한 마디로 점점 메말라 간다. 늘 돈에 쫓기며 살다 보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돈이 많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경험이 쌓이다보면 어른이 되어서는 뭔가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은 별 감흥이 없다. 어릴 땐 크리스마스만 다가와도 그냥 행복했었는데. 제일 좋은 건 외계인이 출현하는 거지만 그건 아직 비현실적인 이야기. 해서 어른이 되면 다들 성공이나 출세, 혹은 연애에 목을 매단다. 그래도 사막이 아름다운 건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 이쯤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퍼시 애들론 감독의 <바그다드 카페>는 어른의 삶이라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는 과연 앞서 말한 성공이나 출세, 연애가 전부일까라고 진지하게 묻고 있다.

미국 라스베가스와 가까운 어느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 카페 하나가 있었다. 그 카페의 이름은 바로 ‘바그다드 카페’. 카페라지만 커피 머신은 고장 난 지 오래됐고, 먼지투성이인 카페의 손님은 사막을 지나치는 트럭 운전사들뿐이었다. 카페 여주인인 브렌다(CCH 파운더)는 괴팍한 성격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15분 정도 뒤 남편을 집에서 쫓아내 버린다. 무능하고 게으르다고.

그런 그녀 앞에 남편에게 버림받은 육중한 몸매의 야스민(마리안느 세이지브레트)이 찾아온다. 야스민은 독일 사람으로 남편이랑 미국 여행을 왔다가 사막 한 가운데서 서로 다툰 뒤 트렁크에서 큰 여행 가방 하나 달랑 꺼내 들고 혼자 여행을 시작했더랬다. 그리고 한 동안 지낼 숙소를 찾다 바그다드 카페까지 오게 됐다. 카페지만 허름하기 그지없는 모텔도 함께 했다.

그런데 야스민이 온 후부터 바그다드 카페에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이 카페의 풍경은 대략 이랬다. 괴팍한 성격의 여주인 브렌다는 하루 종일 피아노만 치려는 아들 살(스모키 캠벨)과 늘 남자들과 어울려 다니며 천방지축으로 살고 있는 딸 필리스(모니카 칼하운)에게 자주 소리를 질러댔고, 카페 직원이나 일부 투숙객들은 그녀의 눈치만 보기 바빴다. 그 속에서 간간히 아직 아기인 살의 아들의 울음소리가 카페 전체를 뒤덮곤 했었다. 속된 말로 사는 게 참 지랄 맞았던 것. 그리고 야스민은 그 속에서 먼지투성이에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 카페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냥 일하는 게 좋아서. 또 아들 살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줬고, 사춘기 소녀인 필리스와는 함께 놀아줬다.

거기다 아이를 좋아해 간간히 울어재끼는 살의 아들을 안아주고 돌봐줬다. 물론 처음 브렌다는 그녀의 호의에 역시나 고함만 질러댔다. 하지만 자신의 성화를 못 이긴 남편이 집을 나갈 때도 사실은 몰래 눈물을 보였던 그녀였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대략 감을 잡았을 것 같은데. 그랬다.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 선 브렌다는 어쩌면 지금의 당신일지도 모른다. 감정은 메말라가고 늘 돈이 들어오기만 기다리며 속에서는 자주 울화통이 치민다면 아마 내 말이 맞을 거다. 물론 성공이나 출세, 연애를 하게 되면 다르겠지만 그건 아예 없거나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설령 일어나더라도 상대성 이론에 의해 시간이 엄청 빨리 지나가 버린다. 아인슈타인이 그랬잖나. “아름다운 여자와 함께 하는 1시간은 1분처럼 느껴지지만 뜨거운 난로 위에 앉아 있는 1분은 1시간처럼 느껴진다”고.

그런데 브렌다는 야스민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면서 변해갔다. 야스민은 성공도, 출세도, 남자도 아니었다. 그저 사람이었는데 그녀와의 소통을 통해 비로소 입가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던 것. 그건 다른 카페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즈음, 뚱뚱한 브렌다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섹시한 여자로 보이는 기이한 경험까지 하게 된다. 그렇다. 이 영화에는 마법이 서려 있다. 중반 이후부터 야스민이 보여주는 마술은 아마도 그런 의미인 듯.

모래밖에 없는 황량한 사막에서 사람이란 그 자체만으로 오아시스 같은 것. 이 영화에선 실제로 그렇게 보이는데 다만 야스민이 오기 전까진 다들 그걸 몰랐던 거다. 당신처럼. 성공, 출세, 연애도 좋지만 사람이라는 오아시스는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아서 좋다. 해서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현실적으로 이런 질문과 의미까지 던진다. “당신은 예뻐서, 잘 생겨서, 돈이 많아서, 나한테 잘해줘서가 아니라 ‘그냥 같은 사람’이라서 누군가를 좋아하고 연민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 차이에 따라 당신의 사막에서 오아시스는 아주 멀리 있느냐 아니면 가까이 있느냐가 정해질 것이다.”

2016년 7월 14일 재개봉. 러닝타임 108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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