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뀌와 요도(蓼島), 그리고 ‘코로나19’
여뀌와 요도(蓼島), 그리고 ‘코로나19’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3.0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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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뀌는 마디풀과의 한해살이 수생식물이다. 요도(蓼島)는 여뀌가 많이 자생하는 하중도(河中島)를 일컫는 말이다. 여뀌의 한자는 료(蓼)다. 수료(水蓼), 택료(澤蓼), 천료(川蓼) 등의 이름에 물, 못, 내를 의미하는 수(水), 택(澤), 천(川) 등이 따라붙어 습지식물임을 알 수 있다.

태화강 상류, 현재 KTX 인근지역을 이수(二水) 혹은 삼수(三水)라 부른다. 두물 혹은 세물이 합쳐지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두물’이라 하면 감천과 남천을, ‘세물’이라 하면 감천과 남천, 삼동천을 가리킨다. 이 가운데 감천은 고헌산에서, 남천과 삼동천은 가지산과 영축산에서 발원한다. 두물이든, 세물이든 본류의 강과 만나면 그 지역은 넓은 퇴적층의 습지가 자연적으로 생기기 마련이다. 이 지역의 강폭은 현재도 넓지만 과거엔 더 넓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지역에는 하천 중간에 생긴 섬 ‘하중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지역을 향토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고을 동쪽 1리, 보통원 아래에 있다. 곧 밭과 산기슭 가운데의 한 언덕이다. 두 시내 사이에 있어서 요도라고 부른다(蓼島在縣東一里 普通院下 田麓中一培?也 處二水間 名爲蓼島).” 《언양현읍지(1880)》 <도서(島嶼)> 요도(蓼島). 이곳을 역사적으로 ‘요도’라 불렀던 기록이다. 현재도 하류에 대천교(大川橋), 구수소(九藪沼) 등 넓은 개활지가 있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요도는 포은 정몽주의 유배지로도 알려져 있다.

‘코로나19’는 역병(疫病)이다. 역병 때문에 처용의 설화를 생성시켜 백성을 안심시킨 신라의 사건에 버금가는 시대적 전염병이다. 국민 모두가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퇴치해야겠다.

여뀌는 매운맛이 있다. 영어권에서 물후추(Water Pepper)라 부르는 이유다. 우리나라 민속에서는 매운맛으로 역귀(疫鬼)를 쫓는 벽사물(壁邪物)로 이용했다. 여뀌를 찧어 물에 풀면 물고기는 매운맛 때문에 혼절한다. 어린 시절 동네사람을 따라 천렵할 때 유심히 본 장면이다. 여뀌가 무성하게 자란 여울에는 물고기가 유난히 많이 모여든다. 여뀌가 수질정화 식물의 한 종이기 때문이다. 여뀌는 물가 주변 들녘에 흔하게 자라는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이다.

특히 여뀌는 자생력이 높아 강변, 수변, 천변을 안 가리고 물가 환경에 잘 적응하는 식물이다. 여뀌가 넓게 퍼져 자라는 싱그러움도 장관이지만 꽃은 보기에도 좋다. 여뀌꽃은 한자로 홍요화(紅蓼花)라 부를 만큼 붉은색이 짙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붉은 색조를 맘껏 뽐낸다. 스쳐 지나가는 길손이 백의(白衣)를 벗어 짜니 홍요수(紅蓼水)가 주르륵 흐르더라는 과장된 표현이 있을 만큼 붉다.

붉음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혹자는 새색시의 연지처럼 느껴져 가슴 설레기도 한다. 이러한 붉음이 돋보여 홍요는 고금의 시어(詩語)에 자주 등장한다. 당(唐)의 이정(李?)은 <송강역(松江驛)>과 <산행(山行)>에서 홍요화(紅蓼花·紅蓼花前水驛秋=붉은 여뀌꽃 핀 수역의 가을), 요화(蓼花·蓼花溝水半?强=여뀌꽃 골짜기 물 상앗대 반 깊이 힘찼었지)를 시어로 사용했다.

여뀌는 초충도(草蟲圖)의 단골 모델이기도 하다. 물가에 흔하게 자라는 서민과 친근한 식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겸재 정선(鄭敾·1676 ∼1759)의 <요화하마도(蓼花蝦?圖)>에서는 붉은 여뀌를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다. 또한 ‘흰모래 붉은 여뀌(白沙紅蓼)’라는 사실적 표현은 마치 현장을 걷는 듯한 절창이다. 전북 남원 요천(蓼川)의 물가에 붉은 여뀌꽃이 만발했기에 그렇게 불렀다. 김안로(金安老1481∼1537)는 시 ‘로(鷺·해오라기)’에서 “여뀌, 물가에 서성이다 이끼 낀 바위로 옮겨왔네. 마음에 물고기 옅봄이 있어 긴 시간 서서 날아가지 않네(蓼灣容與更苔磯 意在窺魚立不飛)”라고 읊었다. 작자는 여뀌가 있는 물가에는 물고기와 함께 해오라기도 모여든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여뀌는 오염된 물을 깨끗하게 하는 정화식물이자 물고기의 은신처이기에 수생동물이 많이 모여든다. 시인의 표현이, 해오라기가 여뀌 그득한 천변을 찾는다는, 자연관찰에서 터득한 경험에서 우러난 시적 표현임을 알 수 있다.

홍요는 민요에도 등장한다. “날아든다 떠든다 오호로 날아든다 범려는 간곳없고 백빈주 갈매기는 홍요안(紅蓼岸)으로 날아들고 한산사 찬바람에 객선이 두둥둥 에화 날아 지화자 에~”(장기 타령 1절) 가사의 속뜻을 음미해보면, 눈부시도록 흰 물가 모래밭에서 한가로이 깃을 고르던 갈매기 한 마리가 시장기를 느꼈는지 붉은 꽃이 만발한 천변 여뀌꽃밭에 먹이를 찾아 날아드는 느낌이다.

현대에 와서 여뀌는 항산화, 피부주름 개선, 미백 등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다시금 관심을 갖게 된 식물이다. 태화강국가정원에는 ‘품격 있고 따뜻한 창조도시 울산’이라는 글귀가 철제 개수구 덮개에 쓰여 있다. 태화강국가정원의 홍요화 자연군락지야말로 식물과 동물, 인문학이 한데 어우러져 이야기꽃을 피우는 울산만의 독창적인 정원이 아닐까?

‘코로나19’ 이놈! 울산은 여뀌, 요도가 있는 곳이다. 여뀌다발로 휘쟁이춤을 추고 ‘물후추’를 온 동네에 흥건하게 뿌려 놓았다. 썩 물렀거라!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조류생태학박사·철새홍보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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