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과 미래역사
영화 ‘기생충’과 미래역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1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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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의 텔레비전은 ‘기생충’ 소식으로 가득했다. 제92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무려 4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는 것이다. 특히 비영어권 영화로는 처음으로 ‘작품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언론도 신이 나 있었고, 신종 코로나로 어둡던 국민들의 가슴도 한결 밝아졌다.

부모·조부모님 산소가 있어서 지금도 종종 찾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울주군 삼동면 출강 골짝에서는 명절 때 마을청년들의 연극은 한 번씩 보았어도 영화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사 간 부산에서도 중·고교를 다닐 때 친구들한테서 영화 본 이야기를 자주 듣기는 했지만, 집이 가난해서 보러 갈 엄두도 못 내었으니 영화는 옛날부터 인연이 멀었다. 그런데 이날 저녁 9시 무렵 아내가 ‘당신이 좋아할 뉴스가 나올 것이니 꼭 보라’고 했고, 그래서 본 것이 ‘기생충’에 대한 뉴스였다.

나는 평소에도 한류의 뿌리가, 울산 말로 ‘우리가 어데 넘이가?’라는, ‘우리 됨’에 있다고 생각해 왔다. 또 이런 생각의 틀이 자본주의 문화가 극단적 양극화로 무너진 후 새로운 인류문화를 만들어갈 것이며, 이런 문화가 새로운 한류가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아내는 그런 나를 잘 알기에 뉴스 시청을 권했고, ‘역시 내 짝’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9시 뉴스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석권한 데 대해, ‘101년 한국영화의 역사뿐만 아니라 92년 오스카의 역사도 새로 썼다’고 극찬하면서 영화제 역사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나는 수상의 배경과 의미에 더 관심이 갔다.

워싱턴 포스트는 “아직 이 영화를 못 보았다면 당장 나가서 보라”고 했다. 나도 그 영화는 못 보았지만, ‘한 가족의 일상을 통해 빈부격차의 문제점을 부각시켰고 열차의 앞뒤 칸으로 지역적 경제격차의 문제, 1·2·3층으로 계층간 격차의 문제를 실감나게 다루었다’는 줄거리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정도만으로도 나는 이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배경과 미래역사에 미치는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기생충’은 첫째, 한 가족의 일상생활을 통해 자본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모순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을 세계인들이 실감하도록 했고, 둘째. 그 갈등의 해법도 함께 제시했다고 본다.

나는 사람들이 모여 떠들썩한 장면을 보고 ‘사람 사는 것 같다’는 울산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이 표현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최근에는 아들 덕에 ‘하트랜드(heartland)’라는 미국 드라마를 집에서 볼 기회가 있었는데, 가족과 지역사회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교감을 주제로 삼아 공감이 갔다. 하지만, 개인의 공간과 일, 개인별 차이와 맞물리는 ‘개인의 생각’을 더 중시한다는 점에서 ‘기생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우리’보다 ‘나’를 더 중시하는 서구에서는 갈등 해법의 고리라고 할 교감의 의미를 어렴풋이 느끼기는 해도 구체적으로 적시해주지는 못한다. 정확한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기생충’은 극단적 양극화가 아닌 평화로운 공존을 갈망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건드렸다고 본다. 한류가 뜨는 이유일 것이다.

당분간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라는 생각의 틀을 담은 문화예술 작품이 잇따라 등장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자본주의 사회가 제1, 제2의 ‘기생충’에 의해 무너지면서 새로운 한류가 펼쳐질 것이고, 세계를 열광시키면서 인류사회를 홍익인간 문화로 바꾸어 나갈 것이다.

박정학 역사학 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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