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모자’가 좋아
‘털모자’가 좋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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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점점 따뜻해진다. 울산에서 살다 위쪽 일산으로 북상을 해오니 기온이 확연히 다름을 느낀다. 십도정도 차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데 그곳까지 이사 간 이유가 뭐냐고 주위에서 자꾸 묻는다. 오래전부터 1기 신도시에 집 한 채 갖고 사는 게 꿈이었고 그 꿈을 이루었다고 대답한다. 상대의 반응은 조용해지더니 아무런 응수도 하지 않는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잘 대응하는 사람이라 해야 되나.

지난 늦가을, 길을 가다 허름한 옷가게 점두에 펼쳐져있는 ‘털모자’ 하나를 값싸게 구입했다. 가을철이어서 당장 털모자는 필요하지 않지만 다가올 한겨울 추위를 조금이라도 대비하기 위해서다. 지난 몇 해 겨울을 일산에서 지내고보니 한겨울의 냉랭한 기온을 호되게 실감했기 때문이다.

내가 구입한 ‘털모자’는 말 그대로 털이 많아 북실북실한 강아지 같다. 새끼 호랑이의 머리정도만한 것이 색깔도 엇비슷하다. 보기에 좀 더부룩하여 집에 와서 가위로 다듬고 귀부분에 달려있는 단추도 튼튼하게 나일론 실로 덧대어두었다. 오래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진짜 털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부드러운 감촉이어서 따뜻한 온기가 저절로 솟는 것 같다. 백 프로 폴리에스테르로 된 것이니 자주 빨아 쓰기도 쉬워 위생적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머리 쪽이 쉬 체온이 내려간다고 한다. 2년 전만해도 한겨울에 가벼운 모자를 써도 괜찮았는데 이젠 다른 것 같다. 혹시나 이곳 기온이 너무 낮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스스로 위로해본다. 초창기 1기 신도시는 건물대비 대지의 비율이 꽤나 큰 편이라 공기소통이 잘 돼서 그런가 싶다.

조선 정조 때 이야기다. 정조가 수원화성을 축조할 때 일꾼들에게 배려를 많이 해주었다. 일을 한 노임뿐 아니라 편리한 건설도구나 그들을 위한 병 치료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잘 보살펴주었다. 심지어는 한겨울 추위에 대비하여 ‘털모자’도 하나씩 나누어 주었으니 일꾼들은 감동하지 아닐 수 없었다. 일의 능률이 좋아 축조기간이 3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털모자의 따스함이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아무리 일 잘하는 사람도 그 일을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능력이 있어도 타의에 의하는 것보다 자부심을 갖고 정성을 다하는 자세는, 목적달성에 더욱 쉽게 다가설 수 있다. 작심삼일이라 마음먹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림책으로 잘 꾸며진 이야기 동화책이 있다. ‘털모자’에 관한 교훈이 듬뿍 들어있다. 유명한 동화작가 번 코스키(V. Kousky)의 ‘털모자가 좋아’(HAROLD LOVES HIS WOOLLY HAT)이다.

털모자를 좋아하는 아기 곰 ‘헤럴드’는 언제나 털모자를 쓰고 다닌다. 털모자를 쓰면 특별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까마귀가 그의 귀중한 털모자를 훔쳐 가버린다. 그는 털모자를 되찾기 위해 까마귀에게 지렁이, 새콤달콤한 블루베리 등 좋아하는 물건들을 다 주었지만, 그때마다 까마귀는 휙 내려와 물건들을 훅 낚아채고는 둥지로 휭 날아가 버린다. 하는 수 없이 소중한 털모자를 찾으러 직접 까마귀 둥지로 올라간 아기 곰 헤럴드는, 둥지 속에 있는 새끼 까마귀들을 보고는 자신의 털모자를 잘 덮어주고 그냥 내려온다. “난 친구를 돕는 곰! 헤럴드거든!”이라고 그 연유를 말한다. 퍽 인상적인 장면이다.

특별히 애착을 가지는 물건 ‘털모자’에 대하여,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의 마음, 그리고 배려와 나눔, 우정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게 한다. 친구인 까마귀의 행동에서도 읽을 수 있는 진실함도 엿보게 된다.

김원호 울산대 명예교수/에세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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