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시봉과 파바로티
쎄시봉과 파바로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2.03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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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 서울 종로에 있는 음악감상실 ‘쎄시봉’에 여러 번 가봤다. 트윈폴리오 멤버 송창식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선보인다.

남루한 옷을 입고 낡고 해진 통기타를 끼고 아리아를 열창한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다. 팝송 애호가들인 관객은 전혀 예상치 못한 아리아 음악을 듣고 크게 감동한다. 감미로운 고음에 낭랑한 목소리로 천장이 뚫어질 듯 파워풀하게 불렀기에 더욱 환호한다.

실제 오페라의 한 장면을 잠시 감상해 보자. 2막이 오르자 주인공이 무대 왼쪽 출구에서 천천히 걸어 나온다. 허름한 옷에 윗도리를 어깨에 걸치고, 검정 구레나룻 수염에 뚱뚱한 체구의 주인공이다. 이태리 성악가 ‘파바로티’. 시골청년 네모리노 역으로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실연하고 있는 모습이다. 유니크한 목관악기 바순의 은은하고 조용한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우나 포르티바 라 그리마/ 넬레 오키 소이 스푼토…” 아름다운 고음의 목소리가 관중을 완전 매료시킨다.

옛날 ‘황태자의 첫사랑’이라는 뮤지컬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큰 맥주잔을 손에 들고 테이블 위에 올라 선창하던 테너 ‘마리오란자’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나는 그보다 고음의 중후한 감이 드는 파바로티를 더 좋아한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여!/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네/ (중략) / 오! 하늘이시여! 나는 죽을 수도 있어요/ 나는 이제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사랑을 위해 죽을 수도 있어요!”〔남 몰래 흐르는 눈물, 도니제티〕

내용이 절절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니 분명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야! 그러니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간절함이 깃든다.

결국 이 오페라의 줄거리는 가짜 약으로 ‘진실한 사랑’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순진하고 소박한 청년 네모리노는, 대농장주의 딸인 아름다운 아디나의 사랑을 얻기 위해 가짜 약장수에게서 값싼 포도주를 산다. 사랑의 묘약으로 알고 속아서 구입하는데, 묘약을 마시면 사랑을 얻게 된다고 믿는 그는, 그걸 마시고 만취하여 구애한다. 묘약의 힘이라 생각하고 기뻐하지만 실은 ‘진실한 사랑’의 힘인 것이다.

풀꽃 시인 나태주가 있다. 그는 메말라가는 화초에 물을 듬뿍 주어야하는 것처럼,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늘 감성의 시를 전해주는 시인이다. ‘진실한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읊는다.

/참말로의 사랑은 /그에게 자유를 주는 일입니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자유와 /나를 미워할 수 있는 자유를 한꺼번에 주는 일입니다 /참말로의 사랑은 역시 /그에게 자유를 주는 일입니다 /나에게 머물 수 있는 자유와 /나를 떠날 수 있는 자유를 동시에 /따지지 않고 주는 일입니다 / (후략)〔참말로의 사랑은, 나태주〕

‘참말로의 사랑’은 자유를 주는 일이며, 그것도 한꺼번에 동시에 따지지 않고 주는 일이다. 즉 그것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도와주는 일이며, 비록 내가 싫더라도 상대가 하고 싶은 대로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일일 것이다.

동백꽃이 생각난다. 그 꽃은 ‘진실한 사랑, 겸손한 마음, 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는 아름다운 꽃말을 품고 있다. 그렇듯 이러한 사랑을 머금은 동백꽃이야말로 속세에 물든 우리들에게 큰 경종을 울려주고 있는 것 같다.

동백나무는 가까이 있어도 피해를 주지 않고 서로 잘 어울려 살아가는 슬기로운 나무라 한다. 우리의 모습도 그랬으면 한다. 우리 모두 화합하며 세상의 울타리가 되는 통 넓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좀 있으면 따스한 초봄이 온다. 동백나무의 꽃을 보러가자.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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