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福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말
“새해 福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2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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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말이 설날이나 양력 1월 1일의 표준말처럼 굳어버렸다. 필자도 어릴 때는 “過歲(과세) 便(편)히 하십시오”라고 했으나 객지에서 잘못 배운 뒤로 어른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했다가 꾸중을 들은 일이 있다. 福이란 물건이 아니기에 내가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고,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정초에 福을 들먹거리면 해롭다고 하셨다. 설날에는 “과세 편히 하십시오”, 설날이 지나면 “과세 편히 하셨습니까?”로 된다. 풀이하면 “설 잘 쉬십시오”, “설 잘 쉬셨습니까?”가 된다. 또 어른에게 “건강하십시오”,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하면 명령이 되기 때문에 삼가야 한다. 머릿속 말로는 “올해도 건강하셔야 할 텐데”가 된다. 불교에서 하는 “福 많이 지어라”는 말은 환영할 만하다. “德(덕)을 베풀어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설날을 ‘쉰다’고 말해 왔다. ‘쉬다’를 중국글자로 적으면 休息(휴식)이 된다. 옛날 우리 집에 농사짓는 머슴이 있었는데 섣달그믐날에는 으레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럴 때마다 우리 어른은 “설 잘 쉬었다가, 열엿샛날(16일) 돌아오너라”고 일러 주셨다.

설날이 되면 일찍 일어나서 어버이에게 세배 드리는 일이 고려시대 말기의 글에 나오는데 그 무렵에 제사는 없었다. 설날아침에 어버이에게 세배 올리는 겨레는 세계에서 우리 배달겨레뿐이다.

세배는 자식이 어버이에게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어떤 이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하는 말이 설날에 남편과 아내도 서로 맞절을 하라는 것이었다. 순서는 세배를 마치고 난 뒤에 설 제사를 지내는 것이 맞고, 부부간의 맞절은 혼인식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이 맞다. 또 남녀가 절할 때는 모두 왼다리를 먼저 굽힌다. 吉(길)이 왼쪽에 있어서 그렇다. 버선과 바지저고리를 왼쪽부터 입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배 절을 올리는 차례는 이렇다. 아들이 둘이 있을 때는 맏아들이 먼저 올리고 둘째아들은 나중에 올린다. 그 다음 맏며느리가 올리고 나면 둘째며느리가 그 뒤를 잇는다. 그리고 세배를 올릴 때는 앞앞이 혼자서 올린다. ‘禮節(예절)’이라는 말에서 ‘節’이 각각, 따로따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그렇다. 따로따로가 없는 행동은 ‘禮(례)’가 없는 無禮(무례)가 된다. 세배시간이 길수록 운세가 좋다는 말도 있다.

의성김씨(淸溪先生)의 종부 金孝曾 여사가 한 말 가운데 ‘정월과 구월 차사’라는 말이 나온다. ‘정월과 구월 처사’라고 한 말을 기자가 기록할 때 ‘處祀(처사)’를 ‘次祀(차사)’로 잘못 받아 적은 것이 문제였다. 학봉 김성일의 아버지가 청계선생으로, 고풍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이 집은 안동시 임하면 ‘내앞’ 천전리(川前里)에 있다. 이 집에서는 추석을 쉬지 않고 음력 9월 9일에 ‘처사’를 행한다. 옛날에는 제사를 추석에 지내는 일이 거의 없었고, 9월 9일 중양절(중지)에 지냈다. 필자의 집에서는 중양절이 아니라 추석이 쉬는 날이어서 도리 없이 추석에 묘제로 대신하고 있다.

차제에 ‘茶禮(다례)’라는 말을 짚고 넘어가겠다. 학교 교과서에 ‘설날아침 제사’를 ‘다례’라고 적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다례’라는 말은 중국 사신을 대접하던 밥상을 ‘茶禮床(다례상)’이라고 했듯이 궁중용어였다. 중원 사람들이 누렇고 냄새나는 흙탕물 대신 향기 좋은 나뭇잎으로 찻물을 빚어 마시던 풍습을 의식해서 만든 말이었던 것이다.

김옥길 서예가·예학자·춘포장학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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