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문 자리에서 힘껏 꽃피우는 사람
머문 자리에서 힘껏 꽃피우는 사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2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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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 모든 사람들에게는 새해의 첫 시작을 알리는 달이겠지만, 3월 새 학기를 맞이하는 교사들에게는 아직까지 지난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의 의미가 더 크다. 학기 중 아이들과 아웅다웅하랴, 어느새 밀린 업무 처리하랴 하루하루 바쁜 일상을 보내는 동안 잊고 있었던 물음들이 머릿속을 떠도는 겨울방학이기도 하다. 올해에는 꼭 이걸 해보리라 다짐하는 마음보다는 작년에 미처 내가 챙기지 못한 것들은 없었나? 알게 모르게 스쳐 보낸 것들이 아쉬움으로 남는 요즘이다.

매년 새로운 아이들과의 만남이 있어 설렘이 있는 직업이라고 한때는 나 스스로 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참 매력 있다 느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아이들을 스쳐 보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고작 일 년, 스쳐 지나가는 짧은 시간에 교사인 내가 과연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허무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더 함께하는 시간들이 주어진다고 한들 아이들의 삶에 더 깊이 있게 영향을 줄 자신은 없었지만, 단순히 국어라는 과목의 지식들을 잘 정리해서 아이들의 머릿속에 심어주는 것, 그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은 과한 욕심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교직 10년차. 어느덧 경력교사의 레벨로 올라가면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 사춘기를 보내듯 방황의 시기를 보내던 때가 있었다.

선생님으로서 제2의 사춘기를 보내던 그 시절, 내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준 글귀를 만났다. 어떤 상황에서 또 어떤 경로로 내가 그 책을 접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6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늘 내 마음을 다잡아주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글귀가 되어 나를 이끌어주고 있다. 송정림 작가의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라는 책 속에 담긴 글귀이다.

‘자신이 머문 자리에서 힘껏 꽃을 피우는 사람. 지구 한구석을 환히 밝히는 그 사람들 덕분에 조금씩 꽃물이 번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조금씩 조금씩 환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자리, 또 지금 내가 함께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깨달음. 우리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저마다의 자리에서 묵묵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의 삶을 환하게 만들고 있었는데, 나는 그 가치를 깨닫지 못했었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어쩌면 내가 지금 열심히 피우고 있는 꽃이 아이들의 삶을 뒤흔들 정도로 화려한 향기를 갖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도 이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싶었는데 내 마음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었나 보다.

이제는 아이들의 삶 속에서 한 번쯤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만들어 주리라는 마음으로 매순간을 보낸다. 뜬금없이 ‘시를 읽다가 선생님 생각이 났어요.’라는 스쳐간 아이의 메시지 하나면 충분하다. 누군가의 인생에 그 정도의 영향력이면 교사로서 충분히 지구 한구석을 밝혀 준 것이 아닐까?

요즘 아이들에게는 꼭 선생님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다양한 멘토들이 많다. 또 함께 교류한 시간에 비례하기보다는 한순간의 만남을 통해서도 누군가의 인생은 바뀔 수도 있다.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화려한 꽃보다는 이따금씩 바람에 실려 오는 은은한 들꽃 향기가 더 그리울 때가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들을 스쳐 보냈다. 또 앞으로 많은 아이들과의 인연이 스쳐 지나갈 것이다. 모두가 새로운 시작을 힘차게 내딛는 지금, 올해에도 머문 자리에서 힘껏 꽃피우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강미연 유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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