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의 책 한 권 드실래요?] ‘인디아나 존스’를 다시 만나다
[이기철의 책 한 권 드실래요?] ‘인디아나 존스’를 다시 만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0.01.20 2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 전경일-붉은 장미
을사늑약 조약 체결(1910년, 한일합방(韓日合邦)이라 말하면 안된다)이후 조선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백성들은 짐승보다 못한 식민 상황에서 생존해야 했다.

이런 조선에 한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로이 채프만 앤드류’. 그는 조선 방문 2년 전 신문에 난 기사를 통해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는 나라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것은 하얼빈에서 일본의 초대 총리였던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저격해 그 자리에서 즉사하게 만든 안중근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의 뇌리엔 이 소식은 오래 남아 있지 않았다. 미자연사박물관(그는 당시 학예사였으나 나중 관장직에 오른다)의 직원이었던 그는 상부로부터 조선 땅 외진 바닷가 마을에 고래가 많이 출몰하고 있으며 여기서 잡힌 고래의 뼈는 앞으로 박물관에 소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로이를 출장 보낸다.

1912년, 그는 스미스 소니언 호를 타고 생전 처음 조선으로 향했다. 그제야 오래전 접했던 안중근에 대한 기사가 다시 생각났다. 아, 그 나라구나. 이 게 무슨 인연이지? 한 번도 발을 디뎌본 적이 없는 미지의 땅 조선!.

48일간의 긴 여행 끝에 드디어 그는 울산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몸과 마음이 긴 여행으로 회복될 무렵 일본인 관리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일은 포경선을 타고 고래를 잡으러 가는 배에 탈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고래의 종과 습성 및 골격 확보 및 조사 연구를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포경선에 승선하는 것은 필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현장에서 익힌 지식과 경험이 실수를 줄여준다는 점.

첫 출항서부터 그는 큰 행운을 잡게 된다. 극경(克京), 즉 다른 나라에서는 남획되어 이미 멸종해버린 ’귀신고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감격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세기 전 상업 포경으로 멸종되고 만 미 서부 캘리포니아만의 고래들이 어디에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박물관 측은 단념하지 않고 그 뼈를 온전하게 박물관으로 실어 오고 싶어 했다.

그는 마을에 체류하는 동안 홍(洪만득)이라는 조선 최고의 고래잡이와 친해진다. 그로부터 조선의 역사와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인 관리자들의 악랄함, 그리고 피폐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듣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고래 해체장에서 새벽 깊은 시간에 소동이 일어났다.

’조선 고래의 머리는 조선 왕의 머리요. 조선 고래의 살은 조선 왕의 살이네. 조선 고래의 팔다리는 조선 왕의 팔다리니 국자로 조선 왕의 뇌수를 푸세. 조선 왕의 뇌수를 퍼서 천황께 바치세‘

일본말을 알고 있던 홍은 격분했다. 그 자리에서 일하고 있던 마을 주민들에게 이놈들이 우리 국왕을 욕보이고, 우리마저 무시한다며 선동했다. 이 노래를 부른 일본인은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다. 다음 날 이 소식을 듣고 전전긍긍했으나 그가 해줄 일은 없었다. 떠날 날이 다가왔다. 로이는 착잡한 마음을 안고 귀국 배편에 몸을 실었다. 전날 밤 일본인 관리가 전해준 고국에서 온 편지 세 통이 저고리에 있었다. 그는 선실에 기대어 그중 한 통의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홍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본인을 쳐 죽인 후 도망간 그는 곧 잡혀 온갖 고문을 당한 후 바다에 던져져 버렸다는 것.

그는 큰 충격에 말을 잊었다. 그가 조선 앞바다에서 본 ’붉은 장미’는 조선의 과거와 현재를 엮는 씨줄과 날줄이었다. ‘붉은 장미’란 다름 아니라 작살포, 당시 작살포는 단순한 창이 아니라 고래 몸에 꽂히면 일정 부분 부푼 다음 폭발해 고래가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잔인한 살상 무기였다. 붉은 장미는 결국 고래가 뿜어 올리는 피의 흔적을 그들의 말로 악독하게 미화시킨 것이다.

이 작품은 멸망한 동양의 왕국 조선에서 벌어진 고래잡이와 그들에 관한 기록이자 소설에 불과 하지만 책을 덮는 순간, 차리리 읽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와 끝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장생포고래박물관 뒤편 작은 광장에는 ’로이 채프만 앤드류‘의 흉상이 있다. 그가 그때 바라본 울산과 귀신고래. 그리고 지금 울산에서 고래의 의미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시간이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