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테리 보더의 사진전 ‘EAT·PLAY·LOVE’
[전시 리뷰] 테리 보더의 사진전 ‘EAT·PLAY·LOVE’
  • 김보은
  • 승인 2020.01.1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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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유머 더한 ‘비주얼 스토리텔링’
14일 현대예술관 미술관에서 큐레이터가 테리 보더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4일 현대예술관 미술관에서 큐레이터가 테리 보더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말썽꾸러기 아들이 사랑하는 엄마에게 뒤늦게 마음을 전하러 간다. 하지만 ‘너무 늦은 만남’이었다. 엄마는 이미 ‘통닭’이 돼 버렸기 때문.

미국 출신 사진작가 테리 보더(Terry Bo rder)의 울산 사진전 ‘EAT·PLAY·LO VE(먹고·즐기고·사랑하라)’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 ‘너무 늦은 만남’에 관한 얘기다.

‘너무 늦은 만남’에서 얇고 구부러진 철사 팔다리를 가진 계란이 ‘To: mother♥’라고 쓴 편지를 든 채 통닭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이같이 웃픈(웃기지만 슬픈) 이야기가 연상된다.

보는 이들마다 제각각의 해석을 할 수 있겠지만 그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활용해 메시지는 전하는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능숙하게 구사한다. 제목을 확인한 뒤 작품을 보면 더 이해가 쉽다.

그가 작품에 주로 쓰는 소재는 빵, 과자, 계란, 과일, 수저, 손톱깎이, 립밤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는 흔한 소재에 구부린 철사를 활용하는 ‘벤트(Bent) 아트’를 통해 사물들이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표현한다. 하이힐 형태를 한 철사로 성별을 나타내는 등 디테일 역시 살아있다. 거기다 삶의 부조리를 고발하거나 인간의 존재에 의문을 던지는 블랙유머(Black Humor)를 더해 다소 무거운 주제들을 재치 있게 풀어낸다.

울산 전시는 대체로 현대인의 일상과 가까운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전시된 60여점 중에는 ‘우편 주문 신부’, ‘명백한 증거들’과 같이 다소 애로틱한 요소가 부각되는 작품이 있는 가하면 ‘사랑의 건배(Toast Toasting in A Thaster)’ 등 언어유희가 돋보이는 작품이 있다. 작품 ‘왕따 계란’에선 백색 계란이 오히려 유색 계란에 왕따 당하는 모습을 연출해 인종차별을 비꼬기도 한다.

울산 전시의 메인 작품으로 꼽히는 ‘I Love You’는 I가 U에게 꽃 한송이를 주는 모습이 담겼지만 I는 흐릿하게, U는 또렷하게 해 나 자신보다 너를 더 사랑한다는 달달한 메시지를 보낸다.

아울러 이번 전시에선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주목할 만하다. 테리 보더는 전시 기획 단계에서 10가지 한국적 소재를 제시받아 이중 3가지 채택해 작품화했다. 그가 선택한 소재는 ‘곶감’, ‘대추’, ‘라면’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대추는 한국 마스크팩을 한 채 ‘매끄러운 피부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곶감은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라면을 끓일 때 면을 반으로 나눠 넣는 것에 침몰하는 타이타닉 배를 비유한 ‘슬픈 안녕’이란 작품도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작품 외에도 전시장에는 메이킹 영상, 테리 보더의 인터뷰 영상, 전시 연계 프로그램 ‘나의 벤트아트 작업실’ 등이 준비돼 있어 테리 보더만의 위트와 감동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테리 보더의 작품은 아기자기하지만 내포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는 일상에서 어쩌면 놓치고 있을 지 모르는 행복을 테리 보더의 전시에서 발견해보는 건 어떨까. 전시는 다음달 23일까지 현대예술관 미술관에서 이어진다.

김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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