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여회 외침만 받은 못난 민족?
930여회 외침만 받은 못난 민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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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를 배우면서 ‘930여 회의 외침만 받고 한 번도 외국을 침략한 적이 없는 민족’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순박하다는 칭찬이기보다 무능하다는 핀잔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외침을 합쳐 930여 회가 되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역사시간에 배운 대로라면, 고조선 때의 한나라, 고구리 때의 수나라·당나라, 고려 때의 여진·거란·몽골, 조선시대의 호란과 왜란 등 침략이라고 할 만한 사건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삼국시대부터의 왜구와 북방국경선 부근의 홍건적이나 여진족의 노략질까지 합친다 해도 50회 남짓이고, 많이 잡아야 100회를 넘지 않는다.

외국을 침략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역사시간에 세종 때 대마도를 공격했다고 배운 것 외에 실제로 우리가 외국을 침략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광개토호태왕비문에는 바다를 건너가 왜를 쳐부수고 복속시킨 것을 비롯해 비려와 숙신, 연나라 숙군성 등을 공격한 기록이 나온다. 중국의 여러 기록을 봐도 (고)구리의 군대는 중국도 굴복시키지 못한 강력한 군대였다.

가장 대표적인 침략 기록이 치우천왕의 중원 정복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나라 공인 역사기록에는 단군 이전의 기록이 안 나오지만, 약 30여 권의 중국 역사서에는 130여 회의 기록이 나오고, 위서 시비에 휘말려 있는 『환단고기』와 『규원사화』 등에는 중국 기록을 뒷받침해주는 내용들이 자세히 적혀있다. 요약하면 ‘구려의 임금 치우가 현재의 요하문명 지역에서 군대를 창설한 후 금속무기를 만들고 싸움기술을 개발해 훈련시킨 뒤 남쪽을 공격해 중원 전체를 휩쓸었는데, 황제 헌원이 10년간 70회를 싸웠으나 이기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중국 기록은 황제가 치우를 이겨 몸을 여러 토막으로 잘라 묻었다고 했으나 우리 기록에는 치우가 천도를 보니 황제의 기운이 살아있음을 알고, 서쪽으로 공격해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게 한 후 동남쪽으로 물러났다고 되어있다. 그 후 한·중·일 삼국에서 전쟁의 신으로 추앙하며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중국 기록보다 우리 기록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국가대표 축구팀 응원단 붉은악마가 승리를 기원하며 치우천왕의 상징 귀면무늬를 로고로 정한 데서도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중국의 『서경』과 『사기』에 ‘구려의 임금을 치우라고 부른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며 치우를 ‘구려의 천자’라고 기술한 데 비해, 중국 화하족 시조이자 치우와 싸운 한족 대표 황제(黃帝)는 어느 나라 임금이라는 기술이 없다. 그래서 2008년 중국의 학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치우와 관련된 신화’를 발표하기에 ‘황제가 중국 어느 나라의 임금이었느냐?’고 묻자 답변하지 못했다. 다음날 내 사무실에 와서 묻기에 ‘옛날 5명의 제후를 지칭할 때 동쪽은 청(靑), 북쪽은 흑(黑), 남쪽은 적(赤) 또는 염(炎), 서쪽은 백(白)자를 붙이고 가운데 제후에게 황(黃)자를 붙였다. 그러니 황제는 당신들 나라에서 구려의 천자라고 한 치우가 가운데 지역을 다스리도록 제후로 봉해준 것’이라고 설명해주자 그는 아무 반론도 제기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우리 겨레가 외국을 많이 침략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능하고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힘으로 상대를 누르지 않고 스스로 굴복하고 들어오게 했고, 황제처럼 항복해온 사람을 죽이거나 내치지 않고 제후로 임명하여 함께 살아가는 포용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홍익인간 사상으로 많은 세계 석학들이 미래 인류사회의 구원사상이라고 말하는 우리 겨레의 저력이다.

박정학 역사학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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