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지조(共命之鳥), 아쉬운 비유
공명지조(共命之鳥), 아쉬운 비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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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조(共命鳥)는 한 몸에 머리가 둘인 일신이두조(一身二頭鳥)를 일컫는 말이다. 사는 곳은 히말라야 눈 덮인 설산이라고 전한다. 공명조의 출처는 <아미타경>의 금수연법분(禽樹演法分=새가 나무에서 부처를 대신해 법을 설함)이다. 불경(佛經) 속의 공명조는 극락국(極樂國)에서 아미타 부처를 대신해서 법음(法音=도리의 소리)을 들려주는 새를 말한다.

불교에서 극락(極樂)은 아미타 부처가 사는 세계다. 여러 가지 고통이 없는 세계라고 이름을 극락이라 했다. 아미타경에는 극락을 보배나무장엄(寶樹莊嚴), 보배연못장엄(寶池莊嚴), 꽃비장엄(華雨莊嚴), 범음장엄(法音莊嚴) 등 크게 네 가지로 장엄된 나라로 소개한다. 공명조는 다른 새들과 함께 법음장엄의 새로 등장한다. 공명조가 기록된 부분은 “또 사리불아, 저 국토에는 항상 온갖 기묘한 여러 가지 색의 새들이 있는데 백학, 공작, 앵무, 사리조, 가릉빈가, 공명조와 같은 여러 새들은 밤낮 여섯때에 아름답고 우아한 소리를 내느니라.(復次舍利弗 彼國 常有種種奇妙雜色之鳥 白鶴孔雀鸚鵡舍利迦陵頻伽共命之鳥 是諸衆鳥 晝夜六時 出和雅音)”이다. 불경에서 공명조는 극락세계에서 다른 새들과 함께 밤낮으로 화아(和雅=부드럽고 듣기 좋은)한 소리를 내는 긍정적인 새로 소개된다.

지난 15일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 1천46명을 대상으로 올 한해 우리나라의 현실을 뒤돌아본 느낌의 사자성어를 발표했다. 먼저 추천위원들이 선택한 사자성어 35개를 파일럿 테스트(pilot test=사전검사)한 뒤 10개로 압축해서 제시하면 설문조사에 응한 교수들은 10개 중 2개를 골라 추천한다. 설문조사는 11월 29일~12월 9일 사이 이메일과 온라인설문조사로 이루어졌다. 그런 과정을 거쳐 집계한 결과 33%(347명)가 ‘공명지조’를 선택했다.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를 추천한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는 한국의 현재 상황을 “마치 공명조를 바라보는 것 같다”며 “서로를 이기려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한국 사회가 참 안타깝다”고 했다. 교수신문의 설문조사는 2001년 시작됐고 올해로 19년째 이어졌다. 교수신문은 불경(佛經)처럼 ‘공명지조(共命之鳥)’를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로 ‘목숨을 함께 하는 새’로 풀이했다. 그러나 공명지조(共命之鳥)를 ‘부정적인 새’로만 보다보니 그 의미는 불경과 완전히 다르게 나타났다.

공통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러하다. “공명조는 한 몸이면서도 두 머리는 각각 자기중심적 행동을 했고, 함께하는 행동은 결코 없었다. 어느 날 한 머리가 자기 몸을 위해 맛있는 열매를 혼자만 챙겨 먹었다. 이를 지켜본 다른 머리는 맹독의 과일을 보란 듯이 먹었다. 강한 독은 순식간에 온몸에 퍼져 둘 다 죽고 말았다”

아미타경에서 화합의 화음조로 묘사된 공명조가 현실에서 ‘너 죽고, 나 죽자’식 공멸의 나쁜 새로 재해석되었다는 것은, 불본행집경, 백유경, 잡보장경 등의 비유에서 인용했겠지만, 지난 한해 우리나라 정치 현실이 그랬다는 점에서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이는 달팽이의 두 뿔이 싸우는 것(蝸牛之爭)과 다를 바 없어 더욱 안타깝다.

불경의 공명조는 히말라야의 설산이나 극락에 살고, 목소리가 아름답다, 몸 하나에 두 개의 머리가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 노래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나 노래하는 선순환의 역할을 분담하는 새다. 공명조는 함께 죽는 새가 아닌 함께 노래하는 상생조인 것이다. 사찰 벽화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새 몸의 사람 머리(대부분 두 머리칼을 묶은 동자 모습)가 바로 공명조이다.

공명(共命)은 통도사 일주문 앞 돌기둥 두 개의 ‘방포원정상요청규 이성동거필수화목(方袍圓頂常要淸規 異姓同居必須和睦)’이다. ‘승려는 항상 불법을 구하고 이를 행하여야 하며, 여러 성씨들과 함께 생활하니 마땅히 화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공명조의 바른 비유라 하겠다.

‘공명’은 비익조(比翼鳥), 연리지(連理枝), 부창부수(夫唱婦隨), 양주보체(兩主保?), 어울렁더울렁은 물론 불교의 이판사판, 무용의 다양성, 상대방에 대한 인정 등 무수한 비유를 함축한 말이다. 불경에서 긍정적으로 비유된 공명조가 세속에서 부정적 표현으로 비유되는 것이 그래서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아미타경 금수연법분에 등장하는 모든 새는 아미타불의 화신(化身)이다. ‘이러한 새들은 모두 법문을 설하기 위해 아미타불께서 화현으로 만드신 것이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출화아음(出和雅音)은 ‘극락세계의 새들은 모두 우아한 목소리로 울어댄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아(雅)’는 본래 ‘아(鴉)’로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뜻한다. 까마귀는 태양을 상징하는 새로 고대에서 아주 신성하게 섬기는 지혜의 새다.

울산은 예로부터 긍정적 공명조의 고향이다. 왜냐하면, 오래전부터 부창부수(夫唱婦隨) 두루미의 고장 학성(鶴城)으로 불렸고, 겨울철만 되면 떼까마귀가 찾아와 아침저녁으로 삼호대숲을 드나들면서 두 번씩 화음으로 노래하기 때문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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