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없는 곳’ 무거동
‘이별 없는 곳’ 무거동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2.0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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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월) 오전 남구 무거동행정복지센터에서 통장 41명을 대상으로 1시간에 걸쳐 ‘태화강 철새문화’에 대한 특강이 있었다. 그렇잖아도 기회가 생기면 재능기부로라도 지역민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싶던 차에 강사 초빙까지 받았으니 보람이 대단했다. 이번 기회에 무거동에 대한 여러 가지 구상을 글로도 남겨보기로 했다.

무거동은 문수산 자락의 좋은 환경 덕분에 삼산동 다음으로 동민이 많은 곳이다. 울산대를 비롯한 교육기관 10개, 별빛 공원 등 근린공원 14개가 이를 증명하지 싶다. 무거동은 과거의 신라와 현재의 울산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계변(戒邊=신라시대 울산의 이름 중 하나)을 찾았다. 불교에서 문수산(文殊山)은 지혜(智慧)의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으로 상징된다. 왕이 문수산으로 향하던 길에 갑자기 남루한 차림의 동자가 나타나면서 두 사람은 같은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었다. 왕이 동자에게 말을 건넸다. “동자야! 왕의 행차를 보았다는 말은 삼가거라.” 말없이 걷던 동자가 힐끔 뒤돌아보더니 망설임 끝에 한 마디 던졌다. “문수를 보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동자의 부드러운 말을 들은 순간 왕은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다. 정신을 차리고 동자를 찾았으나, 동자는 온데간데 없었다. 왕이 한곳에 머물러 ‘헐 수 없다’며 탄식했다. ‘무거(無去)’와 ‘헐수정(공원이름)’이란 지명의 유래에 대한 전설이다.

현재 무거동의 ‘무거’는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까? ‘남쪽 남대문은 삼대 적선으로 살아가는 곳’이란 어른들의 말이 있다. 이러한 덕담으로 미루어 다섯 방위 중에서도 ‘남구’에 사는 것만으로도 복 받은 삶이 아닐까 한다. 무거동은 문수산 자락에 형성된 마을이니 일상이 지혜로운 삶이다. 열 개의 교육기관이 무거동에 있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교육기관이 문수산 자락에 안정되게 자리잡은 것을 어찌 ‘우연’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동녘에서 솟아 오른 해가 제일 먼저 비추는 곳이 문수산이다. 무거동은 어울림의 상징인 ‘태화’와 늘 함께 한다. 문수산의 좌우에 청량과 천상이 자리잡고, 그 앞에는 태화로 흐르는 삼호의 긴 강을 항상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거는 ‘떠남이 없는 곳’이다. 이는 밝은 웃음 즉 함박웃음이 있기 때문이다. 함박웃음은 이별 없이 늘 함께하는 곳에 피어나는 밝은 웃음이다. 의식주가 풍족해서 헤어짐이 없고, 마주보는 사랑의 눈빛이 늘 함께하는 곳이다. 무거는 떠남 즉 이별이 없는 마을이다. 무거인들의 삶의 모습은 상호내거(相互內居=서로의 가슴에 서로가 존재하는 것), 부창부수(夫唱婦隨=부부가 화합하는 것), 연리지(連理枝=두 나무가 엉켜 하나로 있는 나무), 비익조(比翼鳥=두 종의 새가 합친 날갯짓)라고 할 수 있다.

태화강을 거쳐 삼호강을 건너면 문수산이 있는 무거에 도달한다. 무거동은 무거인이 정신의 풍부함을 추구하면서 육체의 빈곤함을 걷어차 버리는 곳이다. 무거는 됫박 속에 감춰진 등불이 아니라 손에 쥔 횃불 같은 곳이다. 무거지역은 용처럼 풍부하고 학처럼 지혜로운 곳이다. 이름 없는 것을 무명(無名), 밝음 없는 것을 무명(無明)이라 하듯 가고, 떠나고, 잃고, 배반하지 않는 것이 무거다.

무거는 아름답다. 사랑하는 가족, 연인과 함께 새벽노을, 아침노을, 저녁노을, 까치놀과 늘 더불어 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거동에 살고 싶어 하는 주민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혜의 산’ 문수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안정된 의식주의 행복이 삼호강으로 흘러드는 곳이 무거동이다. 그래서 무거동의 삶은 겉과 속이 같고, 함께 오래 살아가는 곳이다.

무거동은 한때 ‘삼학촌(三鶴村)’이라 불렀다. 『조선지지자료』(1911)에서는 신복(新卜), 무거(無去), 삼호(三湖) 세 곳을 일컬어 삼학촌(三鶴村)이라 했다. 지명의 흔적을 통해 백년 이전, 이곳이 거대한 습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장검’(長劍이 아닌 長黔=지명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는 관점의 자의적 표현)과 ‘굴화’(屈火)라는 지명이 그런 짐작을 가능하게 한다.

습지는 바로 ‘두루미’라 부르는 학의 터전이었고, 후대에 그곳을 삼학촌이라 부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덧붙여, 지혜와 상서로운 기운을 항상 품고 있는 문수산 자락에 옥동자처럼 포근하게 안긴 무거동에 두루미 울음소리까지 흥을 돋우니 더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이참에 ‘별빛공원’에다 ‘학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의미의 ‘학사정(鶴俟亭)’을 같이 두도록 하자. 학사정은 지혜의 증장, 희망, 야망, 일어남, 비상 등의 의미를 지닐 수 있어 그렇게 제안한다.

무거동의 ‘주민자치센터 평생교육’은 지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준 가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선호 동장과 최민제 주무관의 앞선 생각과 실천이 무거동 발전의 원동력이란 점을 힘주어 말하고 싶다. 이별 없는 곳, 떠남이 없는 곳,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무거동에서 마주앉아 눈 맞추고 웃으면서 밥 한번 먹자.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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