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귀일 작가의 ‘숨은 그리스도인의 침묵’을 읽고
강귀일 작가의 ‘숨은 그리스도인의 침묵’을 읽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25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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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는 신념을 부추긴다.’

글을 쓰기 전 소설가 엔도 슈샤쿠(遠藤周作, 1923∼1996)의 ‘침묵’을 먼저 소환한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쉽게 접근하기 위한 약간 계산된 행동이다.

1966년 발표된 ‘침묵’의 시간적 배경은 일본의 기리시탄 박해사(迫害史) 250년 기간 중 초기에 해당하는 17세기 전반이다.

작가인 엔도는 기독교인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발표되자 나가사키 교구에서는 이 책을 금서(禁書)로 지정했다. 이유는 이 소설이 수많은 영웅적 순교자를 조명하지 않고 교회의 입장에서는 도려내고 싶은 배교자(背敎者)를 주제로 다루고 있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소설 ‘침묵’에서는 후미에(踏み?)의 길을 걸었던 당시 수많은 신자들의 고통을 애써 외면했다는 주장도 있다. ‘후미에’(踏み?)란 에도 막부가 기독교 신자(기리시탄)를 색출해내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 또는 거기에 사용했던 목조판 또는 금속판을 말한다.

후미에는 에도시대,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린 예수나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목재 또는 금속 성화(聖?) 등을 기독교 신자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밟고 지나가게 하여, 예수나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 때문에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거나 밟지 않으면 기독교 신자로 간주하여 체포, 구금, 추방, 더 나아가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잔혹한 탄압방식이었다.

2016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만든 영화 ‘사일런스’는 ‘후미에’에 대한 묘사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먼저 살핀 후 최근 발간된 강귀일 작가의 르포르타주, ‘숨은 그리스도인의 침묵’을 다시 펼쳐들었다.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들에 대한 답이 하나씩 해결되어 갔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나가사키와 아마쿠사 지방의 잠복(潛伏) 기리시탄 관련 유산’을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했다(2018. 6월 30일). 그 이유는 명확했다. ‘현저하고 보편적 가치’를 지녔다는 것.

이 아리송한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잠복 기리시탄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나 사제의 지도를 받지 못한 이들이 추방과 순교를 각오하면서까지 신앙을 지켜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새로 접한 기독교라는 종교를 버리기를 거부했고 오래된 전통신앙인 불교나 신토(神道) 신자로 신분을 위장하면서까지 예수를 끝까지 섬겼다. 새로운 문명 충돌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한 것이 아니라 흡수하면서 모든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강 작가의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한 결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그는 ‘역사’에만 함몰(陷沒)되지 않고 ‘현장’(現場)을 통해 ‘그날’을 ‘오늘’에 재구성했다. 바로 그 점이 돋보인다. 그래서 글은 힘이 있고 독자들에게 구애하지 않아도 사랑받게 돼있는 작품이 된 것이다.

잠복 기리시탄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오이타현의 ‘유후인’은 지금도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온천마을로 각광받고 있지만 그곳에는 아주 질긴 그리스도교 역사의 뿌리도 함께 깊이 박혀 있다. 강 작가도 그의 책 말미에 ‘침묵’의 현장을 답사한 후일담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소설 ‘침묵’을 말하면서 배교자 선교사에 대한 드라마틱한 내용보다 일본인들조차 소설 마지막에 언급된 말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리시탄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라는 부분인데 저항하기 힘든 권위에 굴복한, 신념이 약한 신자들도 분명 존재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밝힌다.

엔도 슈사쿠의 독자층은 아주 넓다. 한국어를 비롯해 세계 13개 언어로 번역된 ‘침묵’은 ‘좌절한 좌익들’도 많이 읽었다고 한다.

강귀일 작가는 책이 출간된 직후 페이스북에 이런 소감을 남겼다. “이제 책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의 독후감은 누가 어떻게 쓸까?, 쓰는 사람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교차한다. 사람들이 읽기나 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책을 접한 순간 리뷰를 쓰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것을 지켰다는 점에서 이 글의 마무리가 뿌듯하다.

이기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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