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기부천사’
‘익명의 기부천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1.24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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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남 김해시청에는 ‘얼굴 없는 기부천사’ 이야기로 훈훈한 분위기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자신을 ‘가정주부’라고만 밝힌 한 여성이 지난 14일 시민복지과를 찾아와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써 달라”며 현금 1천만원을 선뜻 맡기고 돌아간것 때문이다.

사연인즉, 그 돈은 이 여성이 만기가 다 된 적금을 찾아서 가져온 온기가 묻어있는 현찰이었다. 이 여성은, 자신이 어려웠을 때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었고, 이제야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 소식이 지난 19일 김해시 보도자료로 알려지자 경남의 한 신문사는 ‘참으로 멋진 익명의 기부자’라는 제목의 사설을 올렸다. 익명의 기부여성이 만기적금을 하나 더 들었으며, 이것도 소외이웃을 돕기로 마음먹고 내린 착한 결심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예년의 경험에 비추어 ‘익명의 기부천사’는 연말이 가까워 올수록 전국 곳곳에서 얼굴을 가린 채 더 자주 나타날 것이다. 요 며칠 사이만 해도 경북 영주시와 경남 통영에서 익명의 기부천사 이야기가 지면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영주시 평은면행정복지센터에는 지난 20일 한 익명의 기부자가 100만원 상당의 현물(라면)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기부했고, 통영시청에는 22일 13년째 선행을 베풀어온 한 익명의 기부천사가 연탄 2천장을 맡기고 돌아갔다. 이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주민들에게 전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기부’ 문제라면 우리 울산도 둘째가라면 서럽지 싶다. 지난 7일에는 ‘11월의 천사’가 북구 효문동행정복지센터 후문에서 직원을 조용히 밖으로 불러내더니 검은 봉지 하나를 건네고는 바쁜 듯이 사라졌다. 그 속에는 1천만원어치 농협상품권이 들어있었다. 알고 보니 이 남성은 11월마다, 그것도 7년째 이곳을 찾아와 온정을 전해오고 있으며, ‘11월의 천사’란 말도 그래서 붙여졌다. 이 남성은 “얼마 되지 않아서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좋은 곳에 써 달라”고 했고 동 직원이 차라도 한 잔 대접하려 해도 한사코 거절하고는 발길을 재촉했다.

지난 11일에는 동구 대송동행정복지센터에 ‘익명의 독지가’가 나타나 ‘북카페 도서 구입비’로 100만원을 맡기고 갔다. 원인은 아직 밝혀진 바 없지만, 울산의 ‘얼굴 없는 기부천사’ 소식은 대체로 북구와 동구에서 많이 생겨나는 편이다. 어쨌거나, 이럴 때마다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있다. 마태복음 6장 1~4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 너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렇다고 예수가 한 이 말씀이 실명기부를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지 싶다. 비록 액수는 적고 연탄 몇 백 장에 그친다 하더라도, 익명의 소액기부가, 억대 기부를 약속한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들의 고액기부 못지않게 값지고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씀이 분명할 것이다.

찬바람이 불고 세밑이 가까워지면 지역 신문의 ‘사람들’ 난을 가득 채우는 소식이 있다. 공직사회가 중심이 된 ‘실명의 산타크로스 행렬’이다.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있다. ‘감동’이 살아 꿈틀거리지 않기 때문이다. 올 연말에도 미리 점찍어둔 사회복지시설 몇몇이 판박이처럼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저명인사들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장만한 선물꾸러미 앞에서 ‘천사의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려 들 것이다.

올 연말에는 적어도 이런 뉴스쯤은 접했으면 한다. “지방의원 아무개가 어느 복지사각지대에서 익명의 기부천사 노릇을 하다가 실수로 신분이 탄로 났다”라는 뉴스를….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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