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승전대’ 북한서 첫 확인
이순신 장군 ‘승전대’ 북한서 첫 확인
  • 정인준
  • 승인 2019.11.1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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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남북교류협력시대 준비하자⑤ 두만강에서 만난 역사의 흔적
△함경북도 두만강시 조산리에 위치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승전대 아래 누각에서 바라본 전경. 오른쪽 벌판이 끝나는 쪽 두만강 철료 넘어 보이는 왼쪽 하얀 건물은 중국 쪽 중산리(한국명)로 중국관광객 전망대와 국경 수비대 건물이다. 그 넘어 오른쪽으로 보이는 흰 건물은 러시아 하산에 위치해 있다.
△함경북도 두만강시 조산리에 위치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 승전대 아래 누각에서 바라본 전경. 오른쪽 벌판이 끝나는 쪽 두만강 철료 넘어 보이는 왼쪽 하얀 건물은 중국 쪽 중산리(한국명)로 중국관광객 전망대와 국경 수비대 건물이다. 그 넘어 오른쪽으로 보이는 흰 건물은 러시아 하산에 위치해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승전대. 1587년 정조대왕이 승전비를 세웠다. 비문은 홍문과 제학 조정명이 썼는 데, 일제가 이순신이란 이름은 파내 버렸다. 북한은 승전대를 제1480호 보존유적으로 지정해 놓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승전대. 1587년 정조대왕이 승전비를 세웠다. 비문은 홍문과 제학 조정명이 썼는 데, 일제가 이순신이란 이름은 파내 버렸다. 북한은 승전대를 제1480호 보존유적으로 지정해 놓고 있다.

 

-정조, 여진족 격파한 두만강 유역 ‘녹둔 전투’ 기려

-북한 유일 이순신 장군 유적, 학계·후손 관심 높아

소문을 통해서만 전해오던 함경북도 두만강시 조산리에 위치한 이순신 장군 ‘승전대(勝戰臺)’가 국내 최초로 확인됐다. 본보 창간특집호 취재 중 확인된 이 사실은 학계와 충무공 후손들에게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순신 장군 승전대(勝戰臺)는 두만강을 넘어 북간도와 연해주의 광활한 벌판을 향해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한창 젊을 때 북방의 장수로 국경을 지켜낸 전공을 임진왜란 이후 정조대왕(1792년, 정조 16년)이 뜻을 기린 곳이다.

위치는 함경북도 라선시에서 10km 떨어진 두만강시 조산리에 있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로 보존유적 제1480호로 지정해 비각을 세우고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승전대는 이순신 장군이 변경의 장수로 국경을 수비할 때, 북한에 남아 있는 유일한 유적이다. 이순신 장군은 39세부터 43세까지 두만강 일원 장수로 봉직했는 데, 승전대 기록은 43세 때인 1587년(선조 20년) 9월 조산보 만호(현재 영관급)로 봉직했던 당시의 사건이다.

당시 두만강 넘어는 여진족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여진족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침임해 약탈을 해 갔다. 조선은 전국에 6진(鎭)과 29개 보(保)를 세워 국경을 방비 했는데, 조산보도 이 중 하나다.

여진족은 한 날 두만강 유역 녹둔도에 침입해 식량을 약탈 하고, 백성과 병사 160여명을 잡아갔다.(징비록) 이 때 이순신 장군이 소수의 병사를 이끌고 추적해 여진족 수장의 목을 베고, 병사와 백성 60여명을 귀환시켰다. 그런데 조정에선 이를 패전으로 보고, 패전의 책임을 물어 이순신 장군의 목을 베려 했으나, 선조임금이 이를 패전으로 볼 수 없다고 해, 삭탈관직 후 백의종군토록 했다.

이 사건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재조명돼 정조대왕이 이순신 장군의 승전으로 재정립 했다.

정조대왕은 홍문관 제학 조명정에 비문을 쓰게 하고 현 위치에 승전대를 세웠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승전대 비문 중 이순신 이름은 일제가 파버리고 방치했다. 이를 북한이 다시 보존한 것이다.

덕수 이씨 충무공파 이천용(대종회 종보이사) 선생은 “승전대는 북한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유일한 유적”이라며 “승전대가 있다는 것을 소문으로만 들었지 공식적으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이어 “남북이 자유왕래 하면 제일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40대 발자취를 연구하는 데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정진술(전 해사박물관 기획실장) 교수는 “우리(남한)쪽 연구진은 이순신 장군의 해전사에 초점이 맞춰 있어, 북한쪽 연구엔 소홀한 부분이 있다”며 “조산보 만호시절 이순신 장군의 유적이 북한에 보존돼 있다면 학술적으로 의미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정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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