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한 항만하역 안전관리
시급한 항만하역 안전관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2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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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울산항운노조에서 건네받은 사진은 보기에도 멋스러웠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고공 크레인이 하역물을 나르는 작업 모습…. 그런데 이 하역물은 작업을 지켜보는 고공 크레인 위 근로자의 머리 위를 넘어가는 듯 보였다. 파란 하늘, 화면을 가득 채운 그물망, 그 밑의 근로자….

작품 같은 사진이었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위험천만한 내용을 고발하는 현장의 모습이었다. 울산항운노조는 찢어진 그물망 사진도 이 사진과 함께 보내왔다. 크레인 연결부 그물은 가닥가닥 해져 있었고, 그물망은 터진 곳이 많았다.

같은 날 오전 전국 4개 항만공사를 상대로 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종희 의원은 “국내 4개 항만작업장이 죽음의 일터가 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4개 항만에서 10명이 숨지고 61명이 크게 다쳤다. 사망자 수는 부산항만공사 5명, 인천항만공사 4명, 울산항만공사 1명 등이었다. 이 내용을 확인하고 울산항운노조에 전화를 걸어 안전관리상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때 보내온 자료에 사진들이 포함돼 있었다.

울산항운노조에 따르면 울산지역 사망자 1명은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뒤늦게 밝혀졌다. 같은 기간 중대재해사고도 1건 발생했다. 부산이나 인천보다 사고 건수가 적다고 안심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사망사고는 지난해 10월 21일 발생했다. 비철금속 하역장에서 컨베이어벨트의 작동 상태를 점검하던 하역근로자가 기기 점검 중 옷이 컨베이어벨트에 말려들어가 숨졌다고 했다. 컨베이어벨트에 안전커버가 씌워져 있고, 작업 전에 충분한 안전교육이 있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였다.

이 사고 이후 부두운영사는 현장 내 회전체 및 컨베이어벨트 주변에 안전펜스를 설치하고, 작업 전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중대재해 사고는 지난 5월 13일 용연부두에서 발생했다. 하역된 화물을 실어 나르던 지게차에 하역근로자가 치인 사고였다. 지게차에 치인 근로자는 신체 절단과 하반신 마비라는 큰 상해를 입었다. 이 사고 이후 부두운영사는 지게차를 트레일러로 바꾸고 안전관리자도 배치했다.

울산항운노조 관계자는 “근로자 공급처는 항운노조 한 곳이지만 사용자는 부두운영사, 물류업체 등 수십 곳이 넘지만 산업안전보건법 등에는 사용자가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고 했다. “안전관리 책임주체가 모호하다 보니 항만하역 작업은 안전관련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도 했다. 이어 “사용자 규정이 없다 보니 노후장비 교체나 안전교육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며 “항운노조는 제도 개선과 안전작업 확보에 주력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말하자면, 항운노조원이 일일근로자인 탓에 사용자는 상시근로자처럼 근로를 감독하거나 안전교육을 시키거나 안전장비를 갖추는 일에 소홀해도 책임이 가볍다는 얘기였다. 울산항운노조 관계자는 한국노총과 손잡고 정부에 안전관련 법 개정을 꾸준히 요구해 왔으나 수년째 묵묵부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감에서 울산항만공사 고상환 사장은 “항만하역 작업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부두운영사들의 안전작업 협조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울산항만공사는 사용자는 아니지만 연 1회 항운노조원에 대한 안전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안전교육 지원이 부두운용사에게 까지 더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력한 조직력을 갖춘 항운노조 실정이 이러한데 비노조원들이 일하는 하역장은 어떠하겠는가? 항만 내 하역작업장의 안전점검을 꼼꼼히 실시해 위험요소를 배제하고, 정기적 안전교육으로 안전의식을 고취하며, 이를 뒷받침할 관련법을 마련해 ‘안전사각지대’를 없애는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정인준 취재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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