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아가씨’
‘울산 아가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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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풍이 좀 센’ L씨가 행사 다음날 너스레를 떨었다. 18일 오후 억수같이 퍼붓는 빗속에서 열린 태화강국가정원 선포식에서 귀에 익은 노래 ‘울산아가씨’가 불리어졌다는 얘기였다. 사실인양 노랫말까지 흥얼거리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 다시 이틀 뒤, 시에 확인해보니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지만 그냥 웃어넘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울산아가씨’에 대한 설(說)은 좀 구구한 데가 있다. 성악가 조수미·강혜정, 가수 금비단비도 불렀지만 작사가·작곡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넘어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일까. 울산의 시인 J씨와 언론인 H씨의 전언에서 그 까닭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었다.

2005년 7월 20일∼25일 북한에서 열린 민족작가대회에 남측대표단 일원으로 참가했던 J씨는 그쪽에서 입수한 것이라며 ‘조선의 노래’(1995) 등 3권의 북한 노래집을 사흘 뒤 지역 언론에 공개했다. J씨는 이 노래집(‘조선의 노래’)에 ‘울산아가씨’가 들어 있어 눈이 휘둥그레졌고, 울산이 낳은 시인 서덕출의 ‘봄편지’와 가수 고복수의 ‘타향살이’· ‘사막의 한’도 같이 수록돼 있어 놀라웠다고 했다. 울산 노래가 북녘에서도 불린다는 사실이 반가웠다는 그는 ‘울산아가씨’의 작곡자 ‘리면상’이 조선노동당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음악가동맹위원장 등 요직을 거친 인물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편 H씨는 1998년 4월 11일자 리포트에서 귀순용사의 말을 빌어 ‘울산아가씨’가 북한에서도 같은 곡조로 불리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1989년에 세상을 떠난 ‘울산아가씨’의 작곡가가 월북인사 ‘임현상’이며, ‘피바다’와 ‘금강산처녀’도 작곡해 북한에서는 최고음악가 반열에 올랐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흥미로운 것은, 듣기에 따른 차이로 짐작되지만, J씨와 H씨가 말한 ‘울산아가씨’의 작곡가 이름이 ‘리면상’과 ‘임현상’으로 조금 차이가 났다는 사실이다.

궁금증도 풀 겸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지휘자 김명엽(한국합창지휘자협회 고문)의 설명이 가장 듬직해 보였다. ‘김명엽의 합창노트(2018.7.1)’에서 그는 ‘울산아가씨’를 ‘1943년에 가수 황금심이 불러 전국에 널리 알려진 신민요(新民謠)’라고 정의했다. 또 작곡가는 월북인사 ‘이면상(1908~1989)’, 작사가는 개성 태생 고한승(1902~1950)이라고 했다. 노랫말도 소개했다.

“(1절) 동해나 울산은 잣나무 그늘,/ 경계도 좋지만 인심도 좋고요./ 큰 애기 마음은 열두 폭 치마,/ 실백자 얹어서 전복쌈일세./ 에헤야! 동해나 울산은 좋기도 하지. (2절) 울산의 아가씨 거동 좀 보소./ 임 오실 문전에 쌍초롱 달구요./ 삽살개 재놓고 문밖에 서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다네./ 에헤야! 울산의 아가씨 유정도 하지.” (3절은 생략.)

이 노랫말에서 ‘실백자(實柏子)’란 ‘껍데기를 벗긴 알맹이 잣’을 뜻한다. 그러나 ‘재놓고’에 대한 설명은 없고, ‘경계’는 ‘경개’(景槪=경치)의 오기로 짐작된다. ‘재놓고’란 표현은 또 다른 ‘울산아가씨’ 노랫말 어디에도 풀이를 볼 수가 없고, 일부 노랫말에는 ‘제놓고’란 표현도 쓴다. 혹 ‘재워놓고(=잠자게 해놓고)’란 뜻은 아닌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어쨌거나 L씨의 ‘풍’은 ‘울산아가씨’의 작곡·작사가가 누구이며, 남북한에서 두루 애창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고, 새로운 학문적 과제까지 던져준 것도 사실이다. ‘월북인사’였기에 입에 올리기가 조심스러웠을 노래 ‘울산아가씨’의 작곡가 ‘李冕相’. 이 분야의 토론이 지금이라도 시작돼 ‘용어 통일’부터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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