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어른들이 들려준 우정을 확인하는 얘기가 생각난다. 옛날 아주 절친하게 지내는 네 명의 친구가 있었다. 그 중 한 명의 친구가 다른 세 명의 마음을 떠 보기 위해 우정을 확인하는 일을 했다. 어느 날 한 밤중에 볏 짚단을 사람모양으로 만들어 어깨에 메고 친구 집을 향했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첫 번째 친구 집에 들러 “내가 사람을 죽였는데 어쩌면 좋겠나?”하고 어깨에 메여진 것을 보여 주니 자초지종을 물어보지도 않고 매몰차게 내쫓아 버렸다. 그동안 쌓아 왔던 친구의 우정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평소 두 번째로 친하다는 친구 집에서는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은 모른다.”고 외면해 버렸다. 보통으로 친하다고 생각한 세 번째 친구는 “친구야! 어쩌다가 이러한 일을 했나. 자네 같이 착한 사람이 실수로 이러한 일을 저질렀는가 보는데 오늘 밤은 우리 집에서 잠을 잔 후에 진정을 하고 날이 새면 자수를 하게나.” 어느 친구가 진정한 우정을 가졌는지 더 이상 친구에 대한 설명이 필요 없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이 가운데 친구가 될 사이도 있을 것이다. 또는 형, 동생 하면서 지낼 사이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귄 인간관계도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탓에 더욱 각박해져 간다. 친구사이의 우정도 다를 바 없다. 돈, 명예 혹은 권력 때문에 친구를 등져 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간혹 본다. 우리나라의 정치사에서도 권력 때문에 친구간의 우정이 깨어진 경우도 있지 않는가? 나의 어릴 적 죽마고우 가운데 유별난 친구 한 명이 있다. 그는 돈에 대해서는 인정사정이 없다. 돈과 연관되지 않는 일에는 관대하지만 금전적으로 이익문제가 개입되면 용서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참으로 괜찮은 사람이라 여겨지지만 그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이다. 겉으로는 평소에 친구를 위하고 생각해 주는 척 하지만 깊은 속으로 들어가면 인간 이하의 짓거리를 한다. 친구의 거래처를 빼앗은 경우가 있는가하면 남에게 주어야 할 물품대금을 이 핑계 저 핑계로 주지 않는 일도 있다는 얘기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깊은 내막을 잘 모르는 다른 친구들은 그가 평소에 어려운 친구들을 위해 주고 생각하는 줄 착각을 하곤 한다. 10 여 년 전에 어느 친구가 그에게 미안함을 무릅쓰고 어려운 형편을 얘기하고 돈을 빌려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돈을 빌려주는 것은 고사하고 그 친구의 쪽박까지 깨어버린 일이 있기도 했다. 그가 친구에게 대접해 준 것은 된장찌개 점심 한 그릇 사 준 것 밖에 없다. 그에게 관포지교의 우정을 말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다.
친구와 술은 오랫동안 익힐수록 좋다고 했다. 사회가 아무리 급변하고 인심이 흉흉해 진다고 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우정이다. 여러 친구들이 모두 부자가 되고,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출세를 할 수는 없다. 사업을 하다 실패한 사람이 있을 터이고, 실직을 하여 어렵게 사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 나이가 50 대를 넘겨도 반반한 직장이 없는 친구도 있을 수 있다. 굳이 우정을 얘기하지 않아도 인생이라는 것은 조금 잘 되어 있다고 우쭐할 것이 아니고, 자신이 뒤쳐져 있고 현재의 상황이 어렵다 해도 좌절할 일은 더욱 아니다. 진정한 우정은 잘 되어 있는 친구들만이 가지는 특권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