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연애 - ‘가장 보통의 연애풍경’
가장 보통의 연애 - ‘가장 보통의 연애풍경’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17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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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풍경’ 한 장면.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에서 첫사랑은 제외된다. 허나 시작은 첫사랑이다. 생애 처음으로 겪어보는 사랑이라는 벅찬 감정인데 첫사랑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나면 대체로 술만 늘게 된다. 물론 미성년자가 아닐 때다. 아무튼 너무 좋아서 벅찼던 만큼 나빠지기 시작하면 너무 아파 완전히 끝나고 나면 한 동안 사랑 따윈 하지 않을 거라 다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첫사랑이 진 자리엔 외로움이란 놈이 파고들어 마음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 전까지는 다가오기만 해도 좋았던 크리스마스가 이젠 혼자라서 두렵고 싫어진다. 대신 술은 점점 좋아진다. 해서 첫사랑이 보통 맨정신에 시작된다면 그 후의 사랑은 술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알코올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친 쉴드(보호막)을 산화시켜 버리는 성분이 있다. 술에 잔뜩 취해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면 이제 못할 말은 없다. 고백 따윈 일도 아니다. 은근히 야해지면서 감췄던 수컷과 암컷의 본능도 조금씩 튀어나온다.

첫사랑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면 이후의 사랑은 ‘사랑’에 대한 사랑인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이라서 사랑하기 보다는 외로움이 싫어 시작하게 된다는 말이다. 적당히 괜찮은 사람이면 마다할 이유 따윈 없다. 물론 ‘그 사람’은 아직도 존재하지만 이젠 난이도가 좀 낮은 사랑이 좋다. 어차피 사랑도 계획대로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좋은 점은 있다. 경험이 쌓여가는 만큼 이젠 제대로 즐길 줄 안다는 것. 그 지점에서 사랑은 이제 ‘연애’로 추락하게 된다. 그리고 연애의 진정한 맛은 잠자리에서 온다는 것도 알아버리게 된다. 몸을 섞는다는 건 새로운 경지의 사랑이지만 남녀 간에는 대체로 온도차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종족번식 본능이 강한 화성에서 온 남자는 시도 때도 없이 하려고만 하고, 남자의 진심을 더 원하는 금성에서 온 여자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한다는 것. 그러다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을 땐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랬거나 말거나 이 단계까지 오면 이젠 서로를 너무 깊이 알아버려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의 긴장감은 떨어지기 마련. 은근슬쩍 딴 생각을 하며 여유를 부리기 시작하는데 그걸 상대방이 모를 리가 없다.

‘어쭈 요것봐라’는 식으로 상대방 역시 여유를 부리게 되고 그러다보면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 보다는 온도가 많이 식었다는 걸 서로 깨닫게 된다.

그래도 헤어지기는 싫다. 마음이 식은 게 아니라 너무 익숙해서 단지 감각이 조금 지쳤을 뿐이라는 걸 서로 잘 아는 데다 하던 대로 하려는 관성 탓도 있다. 익숙해졌다는 건 그만큼 추억도 많아졌다는 이야기. 이 지점에서 보통 결혼에 골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아니면 대체로 크게 싸운 뒤 헤어지거나 서서히 멀어지곤 한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함께 했던 시간이 얼마인데. 그 어떤 다른 사람을 만난다 해도 익숙함이 남긴 빈자리는 쉽게 채워지지가 않는다. 그렇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라서 사랑한 건 아니었는데 이젠 ‘그 사람’이라서 놓치기 싫어진다.

결국은 더 그리워하는 쪽이 지는 거다. 잘못의 크기와는 상관없다. 처음 썸을 탈 때도 그렇지만 그 즈음 숫자 ‘1’이 다시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카톡을 보낸 뒤 ‘1’이 사라지는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사라졌는데도 답장이 안 오면 돌아버린다.

엎질러진 물을 되돌릴 수 없게 되면 이젠 화를 낸다. 이미 다른 사람이 생겨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그러다 술에 취해 밤늦은 시각에 전화해 쌍욕도 퍼붓는다. 어떤 친구들은 아예 연락을 하지 말라고도 조언한다.

그러면 연락이 올 지도 모른다며. 하지만 몇 달 뒤 연락이 와도 문제다. 어색하기도 하지만 혼자 있다 보니 제정신도 돌아오고 혼자가 편하다는 걸 깨닫게 된 터이기 때문. 하지만 그것도 오래 못 간다. 문득 외로워지기 시작하면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든, 새로운 사람이든 연애전선에 다시 뛰어들어 또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된다.

이 무슨 개판 난리부르스냐고 하겠지만 이게 바로 현실에서 우리가 하는 ‘가장 보통의 연애’다. 그리고 김한결 감독의 <가장 보통의 연애>는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솔직 찬란하게 담아내고 있다.

물론 그건 당신의 연애담이기도 하다. 아니라구? 훗! 그렇다 해도 연애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그리 어둡지는 않다. 해피엔딩인데 이 난리부르스를 또 하게 되는 당신에게 감독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럼 연애 안하면 뭐 할 건데? 출마할거야?”

2019년 10월2일 개봉. 러닝타임 109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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