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 하하하하!!..하!...하.....
조커 - 하하하하!!..하!...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10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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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의 한 장면.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스포일러가 있는 글입니다.-

세상에 웃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웃으면 좋으니까. 관건은 웃음의 이유인데 수많은 웃음의 이유들 가운데 최고는 물어보나마나 ‘행복’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아니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마치 춤을 추고 있을 때, 즉 행복할 때 터져 나오는 웃음이야 말로 우리들 삶의 목적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찬바람을 매일매일 맨몸으로 버텨내야 하는 어른이 되면 그런 행복한 웃음을 갖기는 쉽지가 않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서울에서 혼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당시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월요병이 심했던 난 일요일 오후 4시만 넘어서면 조금씩 우울해지기 시작했는데 그걸 극복하려고 취침 전 방영됐던 인기 코미디 프로를 자주 시청했었다. 물론 웃겼다. 그래서 웃었다. 허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내일부터 다시 전쟁터로 출근해야 할 걸 생각하면 마음은 우울하기만 했다. 시쳇말로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었던 것. 그런 기분은 먹고 살기 위해 남들 앞에서 스스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브라운관 속의 코미디언들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들과 난 그렇게 힘들게 웃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해서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데 출근하는 게 더욱 싫었던 추운 겨울의 어느 일요일 밤, 문득 파고드는 그런 서글픈 생각에 그 코미디 프로를 보다 난데없이 눈시울이 잠깐 불거졌던 적이 있었다.

다음 날 또 출근해서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을 향해 웃어야만 하는 내가 먹고 살기 위해 남을 웃겨야 하는 코미디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꼈기 때문. 그렇게 언제부턴가 내 인생도 코미디가 되어 가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대 위에서는 광대처럼 늘 웃음을 지었지만 무대 뒤에서는 슬픔과 눈물, 공허함에 짓눌려 표정은 심각했다. 어디 나만 그럴까.

때문에 <조커>를 보면서 조커가 폐병 환자처럼 기침을 하듯 힘들게 억지웃음을 토해 낼 땐 ‘삶’이라는 한 글자가 머릿속에 자꾸만 맴돌았다. 그랬다. 2008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에서의 조커(히스 레저)가 세상에 혼돈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러 온 ‘사자(使者)’같은 느낌이었다면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에서의 조커(호아킨 피닉스)는 그냥 ‘인간(人間)’이었다.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라는 평범했던 한 인간이 조커라는 희대의 악당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그래서 ‘자아실현’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그런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언제나 두 가지다. 그곳을 뜨거나, 아니면 스스로 더 미쳐버리거나. 주인공 아서는 후자를 선택했고, 조커가 된 뒤 비로소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 밖 현실에서도 전 세계 1%의 사람이 40%의 부를 갖고 있고, 날마다 3만4천여명의 아이들이 가난과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죽어간다고 한다. 분명 정상적인 세상은 아니다.

하지만 아서일 때 그는 그것마저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어차피 다 같을 순 없으니까. 그래서 그가 원했던 건 ‘예의’였다. 가진 자는 갖지 못한 자를 무시하는 일은 없어야 하고, 적어도 같은 인간들끼리 서로를 이용하는 일도 없어야 할 터.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그렇게 미쳐 돌아가는 세상 앞에 아서도 결국 예의를 포기하게 된다. 원래 그렇다. 악(惡)은 가끔 선(善)에서 출발하곤 한다. 그러니까 선이 상처를 받으면 악이 되곤 한다. 하지만 세상은 늘 선만 강요한다. 그렇게 마음속엔 누구나 선과 악이 공존하는데도. 마침내 그들은 깨닫게 된다.

세상을 움직이는 가진 자들이 선만을 강요하며 질서를 외쳐온 건 자신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함도 있다는 걸. 이 영화가 위험한 이유지만 한편으론 사람들이 배트맨보다 조커에 더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음속엔 누구든 조커 한 장씩은 다 있으니까. 또 따지고 보면 프랑스 대혁명도 그렇게 일어났으니까.

조커가 되기 직전 아서가 말한다. “난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개 같은 코미디였어.” 비극은 그 슬픔의 무게라도 느끼지만 코미디는 슬퍼도 아무도 안아주지 않는다. 겉은 웃고 있으니. 아서는 망상증 환자에 갑자기 억지웃음이 터지는 병을 가진 사람이었다.

영화 속에서 어디까지가 그의 망상인지 단정지을 순 없지만 그의 웃음소리만큼은 크고 확실했다. 그 소리는 대략 이러했다. “하하하하!!..하!...하.....”

2019년 10월 2일 개봉. 러닝타임 123분.

취재1부 이상길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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