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불정책(三不政策)폐지는 아직 멀었다
3불정책(三不政策)폐지는 아직 멀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2.2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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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국학력진단평가에서 성적 부풀리기가 확인되어 크게 물의를 빚고, 국민에게 엄청난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일부는 ‘이때다!’하고 그 동안 실추되었던 자신들의 위상(여교사에게 커피심부름을 시켰다고 인권과 교권을 내세워 교장을 자살하게 하고, 전교조에 속한 여교사가 수배자를 은닉시켰다가 발각되어 문제가 될까보아 이를 비밀로 하려는 과정에 성추행(성폭행?)이 발생하고, 수업시간에 학생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며 여러 학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교장 선생님한테 들키면 다른 선생님 이름까지 거명하여 그 선생님의 심부름이라고 하라는, 거짓말을 종용하는 행동 등등)을 회복시키고자 쟁점화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동안 ‘교육에서 과도한 경쟁을 유발한다고 반대해왔던 학력진단평가이었잖은가?’라며 바른 소리를 해왔는데 이 말은 듣지 않고 강행하여 얻은 것이 고작 ‘허위보고’란 말이냐는 요지이다.

최근에 KTX열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간 일이 있었다. 개찰구(改札口, 기차표를 보이고 확인을 받는 곳)인 것 같은 곳을 전광 안내에 맞추어 그냥 통과하고, 지정 좌석에 앉아 바깥 구경을 하다가 잠이 들고, 서울역에 내릴 때까지 검표를 받아보지 않고, 그냥 서울역 밖으로 나왔다. 어쩐지 옛날과는 달라서 서울역 여행 안내소에 들러 ‘어떻게 된 것입니까? 기차표를 받지도 않고 검표도 않으니---’ 안내직원은 빙그레 웃으며 ‘오래 되었습니다. 고속철 안내 직원이 객실을 지나면서 조용하게 모두 확인하였습니다.’ ‘다른 기차도 그렇게 합니까?’ ‘예, 모두 그렇게 합니다.’

한 줄로 줄을 세워 개찰하고, 객실에서 검표하고, 목적지에 내려서 다시 표를 내고 역을 빠져 나가는 ‘의심하고, 의심 받던 시대’가 오래 전에 없어졌다. 지금 우리는 KTX를 타려면 이 정도의 신용관계가 있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규정대로 표를 사고, 기차를 타야하고, 승무원은 승객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신용은 기본 도덕성에서 나온다. 절차상 먼저 밝혀야 할 것을 가만히 엉큼하게 덮어놓고 있다가, 발각되어 문제가 되니까 ‘물어봤소?’하는 더러운 행동에서, 밝혀도 거짓말로 밝히는 사기꾼 같은 행동에서 우리는 기본 도덕성을 찾을 수 없다. 가장 도덕적인 사람은 그의 행동에서 숨길 것이 없는 투명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를 존경하고 따라서 믿게 되는 것이다. 신용사회는 서로 숨기는 것이 없어서 믿을 수 있는 사회이다. 이런 사회의 형성은 학교에서 연습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신용사회의 연습으로 ‘무감독 고사(無監督 考査)’를 실시할 때 언론의 초점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의 학교교육은 전교조가 감시를 하고 있는데도 항상 의심을 해야 하는, ‘휴전선의 철책 보초’와 같은 감시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머물고 있다. 학생과 교사가 가장 서로 믿고서 생활해야 하는 곳이 학교인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맡은 교사부터 걸리기 전까지는 비밀로 덮어두어버리는, 이에 동조하는 다른 교사들, 여기에 농락당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학교교육을 교사의 자율에 맡길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이다. 교사부터 결과만 좋으면 되지 하는 사고방식으로 채워져 있어 큰 걱정이다. 교육은 과정(過程)도 결과만큼 중요한 것이다. 이런 교육의 기본 철학조차 같지 않은 사람이 교육 일선에 서 있으면 그 학교, 그 나라 교육은 자율에 맡겨서는 안 된다. 각 급 학교, 특히 대학의 자율은 좀 기다려야 한다. 초등학교, 특히 중학교의 작은 프로젝트에서부터 고등학교의 내신 성적까지 도덕적으로 투명하게 운영되어 믿을 수 있는 학교풍토가 조성되기까지 국가로부터 감시감독을 받은 뒤, 그 기초 위에 대학의 자율성이 주어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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