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호수에서 사라진 자귀나무
송정호수에서 사라진 자귀나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09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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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북구 송정동에는 ‘박상진호수’라고도 하는 아담한 호수가 있다. 둘레길을 잘 꾸며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는 곳이다. 송정지구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이 호수는 시민들이 더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산과 호수와 하늘이 잘 어우러져 계절마다 모습이 다르고 여러 종류의 들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필자도 가끔 찾는 곳이다. 태풍 ‘미탁’이 지나간 다음날 이곳을 찾아 사진을 찍고 둑길을 걷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여름에 왔을 때 예쁜 꽃을 피워 여러 장의 사진으로 남겼던 자귀나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있던 곳을 찾아가 보니 밑둥이 싹둑 잘린 채 흔적만 남아있는 게 아닌가. 호수 둑에 자라는 잡초를 제거할 때 이 나무도 같이 베어버린 모양이었다. 송정지구의 한 주민은, 처음에는 잡초만 제거해 자귀나무가 더 돋보이고 좋았는데 다음에 와 보니 그만 사라지고 없어 너무 속상했다며 아쉬워했다.

호수 둑에서 여름철마다 예쁜 꽃을 선사하던 자귀나무의 밑둥이 그 정도 굵어지려면 적어도 30년은 자라지 않았을까. 그렇게 귀한 나무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렸으니 어리둥절해하기는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년 여름 송정호수를 찾았다가 자귀나무가 사라진 것을 보고 놀랄 시민들의 표정을 안 보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작은 잎들이 붙어서 잠을 잔다고 해서 ‘잠자는 나무’, 야합수(夜合樹), 합환수(合歡樹)라고도 한다. 이 나무를 집주위에 심으면 가정에 불화가 없고 늘 화목하다는 속설도 있다. 합환피라고 하는 껍질은 요통, 타박상, 어혈, 골절통, 근골통은 물론 종기나 습진 치료에 효과가 있고, 꽃은 기관지염, 천식, 불면증, 임파선염, 폐렴 치료에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귀나무는 온산읍 앞바다 목도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65호, 넓이 1만5천74㎡)에도 여러 그루가 자라는 것으로 안다. 이 숲에는 동백나무, 후박나무, 사철나무, 다정큼나무, 송악에다 볼레나무, 벚나무, 개산초나무, 팽나무도 자라고 있겠지만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꽃이 아름답고 잎이 특이한 자귀나무는 아무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아니다. 그런 자귀나무를 송정호숫가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저려 온다. 자귀나무가 더 자라더라도 둑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건데 왜 베어내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제초작업 인부가 임의로 잘랐는지 담당공무원이 베라고 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시민들이 그 나무를 얼마나 좋아했는지에 무관심했던 것만은 틀림없지 싶다.

어쩌면 꽃이 지고 난 뒤 잡초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자귀나무를 잡목의 하나로 가볍게 생각하고 잘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뭐든지 한 번 없애고 나면 되살리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러므로 훼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처리하는 행정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또 다른 곳에서도 나타날지 모른다. 순간의 그릇된 판단으로 소중한 자원을 잃어버리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유병곤 새울산교회 목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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