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턱 인 러브 - 사랑에 갇히다
스턱 인 러브 - 사랑에 갇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9.1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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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턱 인 러브' 한 장면.
영화 '스턱 인 러브' 한 장면.

 

조금 삐딱하게 봤을 때 인생에서 사랑은 독배(毒杯)일 수 있다. 나이를 먹다 때가 되어서 사랑이란 걸 겪게 되면 그때부터 대부분의 인생은 고달파진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행복을 만끽하게 된 그나 그녀들은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사랑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이젠 우정으로는 부족하다. 사랑을 알기 전까지는 친구들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지만 사랑을 알고 나면 그 좋았던 친구들도 평범한 일상으로 내려앉게 된다. 사랑은 혼자 오지 않는다. 외로움이라는 그림자를 달고 온다. 해서 사랑을 한번 겪고 나면 외로움을 알게 된다.

사랑을 몰랐던 어린 시절엔 크리스마스만 다가와도, 아니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행복했었는데. 그 좋은 사랑이 독배인 까닭이다. 문제는 그렇게 마신 독에 대한 해독제는 또 다른 사랑밖에 없다는 것. 미국 작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도 이런 말을 했다지. “더 많이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랑의 치료약은 없다.” 그렇게 사랑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평생 사랑에 갇히게 된다.

조쉬 분 감독의 <스턱 인 러브>에서 제목인 ‘Stuck in love’는 ‘사랑에 빠지다’는 의미지만 영화를 보게 되면 ‘갇히다’는 뜻의 Stuck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부각될 수밖에 없다. 해서 ‘사랑에 갇히다’는 직역이 더 와닿게 되는데 그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윌리엄 가족이 사랑을 대하는 모습에서 확연해진다.

집안의 가장으로 유명작가인 윌리엄(그렉 키니어)은 이미 사랑에 갇혀버린 사람이다. 그는 전 부인이었던 에리카(제니퍼 코넬리)와의 이혼 후에도 그녀를 포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새롭게 시작한 그녀의 집에 찾아가 먼발치에서 훔쳐보곤 한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전 부인과 그녀의 새 남자친구가 싸우는 모습을 훔쳐보면서 윌리엄은 이렇게 독백한다. “한 편의 익숙한 시트콤을 보는 느낌이다. 쇼는 같고 남자 배우만 바뀌었다.”

사랑의 생리를 잘 아는 윌리엄은 에리카가 다시 돌아 올 거라 믿고 있다. 그에게 이제 사랑은 할지 말지라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때론 자신을 힘들게 해도 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윌리엄에게는 성적 욕구를 같이 해결하는 유부녀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녀의 조언으로 그는 에리카를 포기하고 새로운 동반자를 만나보려는 시도도 하게 된다. 아무튼 지금 그의 고민은 온통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반면 남매인 사만다(릴리 콜린스)와 러스티(냇 울프)는 아직은 사랑에 갇히기 전이다. 하지만 둘의 사정은 많이 달랐다. 대학생인 사만다는 엄마가 바람이 나 가족을 버린 것에 큰 충격을 받은 뒤, 사랑이란 걸 아예 믿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런 엄마를 기다리는 아빠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둘의 모습을 통해 사랑에 염증을 느낀 사만다는 남자를 만나더라도 그냥 즐기려고만 할 뿐 마음은 주지 않았다. 이제 고등학생인 러스티는 같은 반에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누나와 달리 엄마도 가끔 만나지만 사랑을 겪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던 것. 물론 그런 사만다와 러스티도 곧 진실된 사랑을 만나게 되고, 그로 인해 가벼웠던 삶은 점점 무거워져 간다.

<스턱 인 러브>에서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 지점에서 왜 제목이 ‘Fall in love’가 아닌 ‘Stuck in love’인지 명확해진다. 바람난 아내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윌리엄의 모습이 비현실적일 순 있지만 후반부에 반전처럼 드러나는 진실 앞에선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그렇게 현실적이라서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해피엔딩이 오히려 무겁게 느껴졌다. 모처럼 찾은 웃음은 또 언제 미움이나 슬픔으로 바뀔지 모르니. 무엇보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사만다와 러스티 남매 앞에 펼쳐질 길이 그들의 아빠엄마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누구든 막연하게 사랑을 꿈꾸던 어린 시절에 사랑은 하는 거였을 거다. 하지만 사랑이란 걸 시작하고 나면 알게 된다. 그건 하는 게 아니라 빠지는 것임을. 사랑은 선택하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더 나이를 먹게 되면 사랑은 하는 것도, 빠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미 사랑에 갇힌 채로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사랑도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

2014년 2월20일 개봉. 러닝타임 97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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