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식적(假飾的)인 말버릇
가식적(假飾的)인 말버릇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2.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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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제목으로 관심을 끌어 독자의 시선을 고정 시키고자 한다. 지금까지 그냥 지나쳐왔던 우리들의 말버릇 중에 바로 고쳐야 할 것은 가식적인 말버릇이다. 사실, 말뜻이 분명하지 않을 때는 그 말과 대비되는 말을 떠올리면 조금은 분명해진다. 그래서 가식적인 행동을 이해하려면 자연스러운 것과 대비시켜 쉽게 이해하도록 한다.

등산길에 외딴 집, 담 모퉁이의 감이 알맞게 익어 보이니까 하나를 따서, ‘감나무 하나를 놓고 누가 농약을 뿌렸겠어?’ 하면서 바지에 쓱쓱 문질어서 덥석 한 입 먹어보는 60넘은 노인의 행동은 자연스럽다. 강호순 같은 살인범을 놓고, ‘죄가 나쁘지 사람이 나쁘겠느냐? 미남으로 생기지 않았느냐.’하며 죄와 인권은 분리해야 한다는 거룩한 표정의 느릿느릿한 말투는 가식적인 행동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더구나 강호순의 선량해보이려는 얼굴표정 관리는 어느 대학교 모 교수와 가식적인 면에서 너무 닮았다. 그 교수는 학생들 앞에서는 근엄한 표정관리를 하면서 10년이 넘어도 논문 한 편 제대로 쓰지 않았다. 강의시간에도 학기 초에 학생들 조(組)를 짜서 진도대로 발표하게 하고 자신은 새로운 지식이나 기본개념의 설명조차 하지 않은 채 10분정도 학생들 발표를 평가만 하면서 한 학기를 때운다. 목을 아끼는 아주 비열한 행동을 서슴없이 30여년을 해오고 있다. 자신은 휴강할 핑계거리만 찾으면서 가장 학생들을 교육적으로 사랑하고 가르치는 교육자인 척 한다. 강호순도 동내 사람들에게 가식적으로 행동했다. 둘 다 가식적인 행동의 표본이 되고도 남는다. 그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가식장이 이다.

뉴스로 김수환 추기경의 추모행렬을 보며 종교적 바탕은 같은데 형식이 다르다고 애 써 외면하는 무표정한 얼굴에서 가식적 행동의 진수를 본다. 요즘에는 구역질나는 표정관리를 하고 다닌다. 이 사람은 사랑 만들기를 하면서 자신의 폭포가 쏟아질 때도 ‘O여! O여!’하다가 파트너의 기분을 잡치게 하는, 본능적인 가식장이 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뉴스를 전할 때 깜박 실수하는 것에 사실(事實)과 의견(意見)을 혼합하는 것이 있다. 엄격히 말해, 언론의 뉴스는 사실만을 알려야 한다. 여기에 담당자(기자와 아나운서)가 의견을 보태면 문제가 된다. 방송에서는 억양조차도 의견이 될 수 있다. 예로서, 연말의 불우이웃돕기 의연금 모급 행사에 진행자의 가식적인 논평과 애걸하는 억양에서 사실과 의견이 혼합되어버리는 불쾌한 장면을 자주 대한다.

최근의 김수환 추기경 추모행사 보도에서도 담담(淡淡)하고 의연(毅然)한 태도를 보여야 독자와 시청자가 뉴스에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온다.

가식적인 행동과 혼동하기 쉬운 것에 ‘지나치게 형식을 따르는, 그것도 예의라고 허접을 떠는 행동이 있다.’ 대학교 총장이 학과를 방문하여 교수들의 여러 의견을 수렴할 때, 두 무릎을 붙이고 그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놓고 앉아서 극도로 공손한 척 하는 행동이다. 그 교수는 총장과의 대화가 끝난 뒤에 금방 인격모독적인 언사를 늘어놓는 사람이다. 거짓 행동, 그래서 가짜로 장식한 행동을 하는 것은 강호순의 거짓말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나라 교육이 새롭게 발전하려면 교육자, 특히 대학의 교수부터 가식적인 말버릇을 고쳐야 하겠기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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