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꽃 유럽 편 ⑨…화려한 도시 모스크바
여행의 꽃 유럽 편 ⑨…화려한 도시 모스크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9.0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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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하면 소련을 떠올렸고 여름휴가를 간다는 사실에 적잖이 흥분되었다. 광활한 러시아 땅 서쪽 끝에 자리 잡은 거대한 도시 모스크바는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말한 것처럼 러시아인들에게 어머니 같은 곳이다. 모스크바에 도착하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바바리를 입은 예쁜 러시아 미인을 보고 놀랐는데 차장 밖에 두꺼운 외투와 머플러를 두른 사람들이 보였다. 시내는 우리처럼 차도 엄청나게 막혔다.

크렘린이 유명하지만 나는 바실리 사원이 더 보고 싶었다. 붉은 광장에 있는 아주 독특한 모양의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다. 이반의 군사적 정복 기념물로 갖가지 색깔로 소용돌이치는 양파 모양의 돔으로 되어 있다. 같은 토대에 아홉 채의 독립된 예배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두는 중앙의 첨탑을 둘러싸고 배열되어 있다. 동화 속의 궁전같이 화려하다. 똑같은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두 명의 건축가를 장님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보니 아름다움 속에 아픔이 느껴졌다.

굼 백화점은 지은 지 백 년도 넘은 오래된 건물이라고 하나 굉장히 세련되고 멋진 건물이다. 내부는 넓게 뚫려 있고 1층 중앙에는 분수가 있어 매우 아름답다. 팔각형 분수는 다이빙하는 여자 조각이 있고 주변은 짙은 핑크와 내가 좋아하는 청색 수국으로 장식되었는데 정말 예쁘다. 세계적인 브랜드와 러시아의 특산품을 팔고 있다. 백화점 안에는 조각품과 나무, 꽃을 가운데에 놓고 양쪽으로 가게들이 있는데 또 하나의 쇼핑 거리를 연출하고 있다.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는 여기서도 줄을 서야 한다. 쇼핑에 관심이 없던 나는 안 들어갔으면 후회할 뻔했다.

러시아의 역사를 온몸에 담고 있는 모스크바는 크렘린을 중심으로 뻗어 관광지가 다 근처에 있다. 레닌 묘와 붉은 벽돌 건물의 국립 역사박물관을 지나 공원 쪽으로 들어가면 크렘린궁이 나온다. 가방도 맡기고 공항처럼 검사도 한다. 800년 동안 역대 황제들의 거처였고 현재에는 대통령이 거주한다. 꼭대기에 루비 색 별이 달린 예쁜 탑이 인상적이다. 크고 휘황찬란한 금색 돔형 등 4개의 유명한 성당이 있고 대포의 황제와 종의 황제가 거대하다. 그러나 실제로 둘 다 사용되지 못했다.

모스크바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이 아르바트 거리이다. 차량 통행이 금지되는 보행자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제정러시아 시대의 건물들 상당수와 늘어선 가로등이 분위기를 돋우어 낭만적인 정취가 있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푸시킨, 레르몬토프, 투르게네프 등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우리나라의 인사동이나 대학로를 연상시킨다. 노천에 중고 책을 사는 자판도 있다. 노천카페도 많지만 맥도날드, 스타벅스도 있다. 푸시킨 내외의 동상을 보니 어린 아내가 예쁘다. 너무 예뻐서 화근이 된 것 같다.

이곳은 러시아 젊은이들이 추앙하는 요절 가수 빅토르 최가 근거로 삼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빅토르 최는 90년대 초 사망한 한국인 2세로 러시아 대중음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빅토르 최 추모의 벽이 거리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벽돌이 깨어지고 떨어져 나간 곳도 있지만, 사진과 장미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아직도 그를 추모하는 팬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우리가 노래하니까 너는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빅토르 안(안현수) 얘기도 화젯거리다. 2006년 동계 올림픽 당시 한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였고,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를 5연속 제패했으며, 세계신기록도 수립했다. 2011년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러시아로 귀화하여 러시아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빅토르 최처럼 유명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빅토르 안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2014년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훈장과 모스크바의 고급 아파트를 포상으로 받았다. 러시아에서 국민적인 영웅으로 대접받았다고 한다.

굼 백화점 근처 도로 위에는 마치 샹들리에로 장식한 것처럼 환상적인 거리 풍경이 펼쳐졌다. 8월인데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 지나가는 이층 버스도 너무 화려한 색깔이고 예뻤다. 근데 이곳 사람들은 러시아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이 없다. 세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소련의 흔적은 많이 찾아볼 수 없다. 모스크바에는 겨울이 오고 있다. 백야의 도시인 동시에 흑야의 도시이기도 하다. 해를 잘 볼 수 없는 도시는 우울증을 가져온다. 뜨거운 태양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윤경 여행큐레이터·울산누리 블로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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