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제의 자연산책] 사무치도록 그리워하는 꽃
[조상제의 자연산책] 사무치도록 그리워하는 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9.0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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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서초상사화.
범서초 상사화.

 

사무치도록 그리워하는 꽃이 있습니다.

꽃은 잎을 그리워하고, 잎은 꽃을 그리워합니다.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른 봄 잎은 싱싱함과 푸름을 맘껏 뽐내고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그라지고 맙니다. 공허함과 잡초만이 그 자리를 메웁니다. 긴 기다림이 시작됩니다. 7월이 다갈 즈음 화단 한구석에서 연노란 꽃대가 뾰족하게 하늘을 쳐다봅니다. 꽃대 위 꽃자루에는 대여섯 개의 꽃들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꽃자루가 벌어지면서 하나 둘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꽃대는 마구 올라옵니다. 온 화단이 연분홍 상사화로 가득 찹니다.

화엽상불견(花葉不相見) 상사화(相思花). 잎과 꽃이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만나지 못하는 꽃. 상사화는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자생상사화가 5종, 재배상사화가 12종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자생(自生)상사화? 산야에서 스스로 자손을 퍼뜨리며 살아가는 상사화가 5종이나 있다는 이야긴데. 진노랑상사화, 붉노랑상사화, 위도상사화(흰상사화), 제주상사화, 백양꽃입니다.

진노랑상사화(Lycoris chinensis). 노랑이 아주 진하다는 이야긴데. 매혹적인 이 진노랑상사화는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입니다. 물기가 많고 자갈이 많은 수풀 속 낮은 곳에서 자랍니다. 한국 특산종입니다. 고창, 부안, 백양산 등지에서 자라며, 7월 말쯤 신령스러운 빛이 비치는 영광 불갑사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붉노랑상사화(Lycoris flavescens). 이름이 왜 붉노랑상사화일까요? 눈을 씻고 다시 봐도 꽃 색은 노랑색입니다. 어떤 이는 ‘암술이 붉어서’라기도 하고, 어떤 이는 ‘직사광선이 강한 곳에서는 노랑 꽃 색이 붉게 보여서’라기도 합니다. 영명을 보니 ‘Reddish-yellow surprise lily’이군요. 아마 여기서 붉노랑이란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고슴도치를 닮은 섬 위도(蝟島). 전라북도 위도에는 연한 노란색이 도는 흰색의 위도상사화(Lycoris uydoensis)가 자랍니다. 위도상사화는 전 세계에서 오직 위도와 서남해안 섬에만 사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특산식물입니다. 종소명이 위도입니다. 바다의 여신이 위도에 와 못 다한 사랑을 위해 꽃이 되었습니다. 흰색의 상사화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찾아 위도의 달빛 속에서 바다의 여신을 만나러 갑니다.

바다의 여신은 제주에도 못 다한 사랑을 뿌리고 갔습니다. 제주상사화(Lycoris chejuensis)입니다. 현재의 국명은 태경환과 고성철이 제주에서 제주상사화를 처음 발견하고(1993) 붙인 이름입니다. 우리나라 특산종이나 재배종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한국특산종의 상사화는 또 있습니다. 백양꽃(Lycoris koreana). 백양산 백양사 인근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이며 상사화의 변종으로 어둠속에서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고려 또는 조선상사화라고도 합니다.

상사화 가족 중에서 좀 유별난 것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상사화가 7~8월에 피는데 이 꽃은 9월 중순에 핍니다. 꽃도 진홍색으로 그 모양이 특별합니다. 9월에 절간 주변을 붉게 불태웁니다. 고창 선운사, 함평 용천사, 영광 불갑사 등이 이 꽃 축제로 유명합니다. 울산은 대왕암공원 솔밭에 가면 붉게 물든 이 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꽃무릇(Lycoris radiata)입니다. 무릇은 ‘물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래서 물기가 있는 반그늘에서 잘 자랍니다. 원산지는 중국이며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꽃무릇은 정작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없습니다. ‘돌마늘’이란 뜻의 석산(石蒜)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태화강대공원 십리대밭 길가에서도 상사화와 꽃무릇이 우리를 반긴다면 어떨까요? 추석 연휴 그리운 연인을 만나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동구 대왕암 공원에 꽃무릇을 만나러 가는 것은 어떨까요?

조상제 범서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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