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조화, 더불어 사는 지혜
평화, 조화, 더불어 사는 지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8.2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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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페라와 뮤지컬을 좋아한다. 둘 중에 선호도가 높은 것은 감상의 문턱이 조금 더 낮은 뮤지컬이다. 공연장을 많이 다니지는 못해도 작품의 음반으로 그 감동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우리 창작뮤지컬 ‘영웅’이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이 되던 2009년 10월 29일 초연의 막이 오른 이 작품은 이후 10년간이나 장수를 누리며 사랑을 받고 있다.

3·1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올해 광복절, 우리 부부는 초등학생인 두 아이와 함께 이 작품을 감상했다. 감성이 예민해서일까, 통한이 깊어서일까? 뮤지컬에 빠져드는 사이 눈에서는 뜨거운 무엇이 흘러내렸고, 감동이 밀려드는 순간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공연 내내 주변에서는 훌쩍거리는 소리, 한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각 장이 넘어가는 순간마다 터지는 뜨거운 박수소리를 들으며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작품 속의 음악들을 들으며 그 감동을 다시 느끼고 있다. 이 작품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탄탄한 무대구성과 빈틈없는 배우들의 연기, 뛰어난 음악들이 조국 독립을 향한 순국선열들의 열정과 희생, 인간적 고뇌를 관객들에게 완벽하게 전달하기 때문은 아닐까? 안중근 의사와 독립군들이 손가락을 잘라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는 혈서를 쓰며 조국 독립의 결의를 다지는 ‘단지동맹’,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야욕이 담겨있는 ‘조선은 보물창고’ ‘조선 얕보지 마라’ ‘출정식’,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 고뇌와 결의가 담긴 ‘영웅’ ‘십자가 앞에서’ ‘장부가’, 재판에서 이토 히로부미 저격 이유를 당당하게 밝히는 ‘누가 죄인인가’ 등 모든 수록곡들이 극의 내용과 감동을 전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브로드웨이의 여느 뮤지컬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곡들이라고 생각한다.

앨범에 수록된 29곡 중 요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곡이 있다. 안중근 의사가 뤼순(여순)감옥에서 형 집행으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집필을 했던 미완의 ‘동양평화론’ 내용이 언급될 때 울려 퍼지는 노래다. 간수가 동양평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안중근 의사가 “난 주먹을 불끈 쥐고 한 손으로 이토를 쐈지만 내 아이들의 두 손은 기도하는 손으로 모아지기 바라오. 그 마음이 바로 바로 동양평화요”라고 대답하며 시작되는 노래다. 모든 글은 ‘독자의 오독의 자유’가 있고, 모든 예술작품은 ‘감상의 오해의 자유’가 있듯이 감동을 느끼는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가사에 큰 울림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낮을 밝힌 저 태양이 달에게 자릴 내주듯, 밤을 지킨 달이 다시 자릴 양보하듯, 꽃이 지면 그 자리에 열매가 맺히듯, 자연의 섭리 그대로 어울려 사는 것, 서로 자리를 지키며 조화롭게 사는 것, 그게 바로 동양평화… 모두가 더불어 사는 지혜, 작은 평화 큰 평화가 어찌 다를 수 있겠는가? 오순도순 둘러앉아서 소소한 일상 서로 얘기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평화… 서로서로 인정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 서로 자리를 지키며 조화롭게 사는 것, 평화롭게 사는 것…”

평화. 그것은 무엇인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소소한 마음들과 행동들이라는 것, 이들이 모여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평화라고 이 노래의 가사는 이야기한다. 물론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미완이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아시아 공동체와 관련된 내용일 거라는 연구결과들을 생각하면 그 차이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 욕심을 내세우지 않고 조금씩 양보하고, 한쪽이 양보하면 다른 쪽에서도 양보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할 때 분쟁 대신 평화가 찾아온다. 그리고 승자독식의 패권주의 속에서는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현재 일본이 우리를 상대로 벌이는 경제보복(또는 경제침략)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겠지만, 결국은 아시아 경제대국의 패권을 지키려고 우리의 성장을 막으려는 것이 아닐까? 작금의 상황을 통해 우리는 한·일간 경제수준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경쟁력이 더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은 틀림없이 이러한 사실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동안 일본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존중할 것은 존중하며,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조화와 공동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풀어 갔다면, 상황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도 어떤 사회인지 되돌아보자. 자신의 발전을 위해 경계하며 상대방을 밟고 넘어서야 한다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 아이들이 서로 돕기보다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을 위해 친구를 경쟁상대로만 인식하는 사회…. 이런 사회가 과연 구성원들이 평화로베 어울릴 수 있는 건강한 사회, 발전 잠재력이 무한한 사회인지 되묻게 된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오는 피로감과 한계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사회구성원의 공존과 발전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서로가 협력할 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작금의 상황 속에서 ‘동양평화’의 노랫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마영일 울산발전연구원 환경안전연구실·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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