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위 못 믿겠다”… 공정성 불만 ‘재심청구’ 증가
“학폭위 못 믿겠다”… 공정성 불만 ‘재심청구’ 증가
  • 강은정
  • 승인 2019.07.15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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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재심청구 2017년 15·작년 22·올해 7월 현재 12건‘소명부족’ 피해자 대다수 신청… 80% 이상 처분 변경학교폭력 은폐·축소 책임 회피 수단 전락 지적 나와시교육청 “ 교사 연수·신속대응팀 운영으로 예방 최선”

“학교폭력자치위원회(학폭위) 결과를 믿을 수 없어 재심 신청합니다. 아무래도 학교와 연관없는 사람들이 사안을 보면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할 테니까요.”

15일 중학생 자녀를 둔 A씨는 울분을 토하며 말했다. 자녀가 집단 따돌림을 당해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살충동’까지 느꼈다는 전문가 상담 결과와 따돌림을 강요했다는 반 친구들의 구체적인 진술도 첨부했다.

하지만 학폭위 결과는 ‘조치없음’이었다. 학교폭력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A씨는 “학폭위의 학부모 위원들이 회의에 참여한 우리 애(피해자)한테 ‘뭐가 힘드냐’ 등의 말을 하면서 2차 가해를 했다”라며 “학교측 역시 교우관계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학교폭력을 무마하려는데 급급했다”고 밝혔다. A씨는 결국 재심신청을 했다.

학교폭력이 학교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학폭위의 대처는 학교, 교사 등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폐, 축소하기 급급해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는 결과를 내놓으면서 재심 신청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학교폭력이 발생해 신고가 접수되면 2주 이내에 학폭위를 열어야 한다.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이 각자 입장을 진술하고, 학폭위는 사안을 판단해 1단계(서면사과)부터 9단계(퇴학)까지 징계처분을 내린다.

하지만 학폭위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는 피해자들 대다수는 재심청구를 하고 있다.

울산시에 따르면 학폭 피해자 재심청구 건수는 2017년 15건에서 2018년 22건, 올해는 7월초 기준 12건으로 집계됐다. 울산시는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를 열고 11명의 전문위원들이 사안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재심청구가 해마다 늘고 있는데 신청자 대부분이 학교 내에서 시행되는 학폭위의 절차를 문제 삼는 경우가 가장 많고, 학부모들의 감정싸움으로 번져 오는 경우도 많다”라며 “재심 청구된 사안 중 80% 이상 처분 변경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재심 청구 사례 대부분은 ‘소명부족’에서 오는 경우다.

재심청구하는 학부모들은 1차 단계인 학폭위가 열릴 때 증거자료 부족으로 가해자들에 대한 경미한 처분이 내려졌다고 생각하고, 재심에서는 구체적인 피해 사례 입증을 위해 통화내용, SNS, 사진 등 다량의 자료를 제시하는 학부모들이 많다고 시 관계자는 설명했다. 또한 재심 대부분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어 불만이 나오는 경우도 드물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이 말해주듯 학생과 학부모 양쪽 모두 학폭위의 공정성이 결여됐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최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교폭력을 학교에 알리지 말 것, 학폭위 실태조사에 사실대로 말하지 말 것, 어른을 믿지 말아야한다는 ‘학교폭력 3대 대처법’이 돌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폭력예방법상 학폭위 위원은 5인 이상 10인 이하로 구성하되 이중 과반수는 학부모로 정하고 있어 전문성과 공정함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부모 위원들이 학교폭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사실관계 판단보다는 학부모들 사이의 관계, 학교와의 관계에 치중해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면서 피해학생 입장에서는 받아야할 사과를 못 받게 되고, 가해자와 얼굴 마주하며 학교를 다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한 학부모는 “학폭위가 열리면 학폭위 위원 7명 중 (과반수를 차지하는)학부모위원 4명에게 잘 보이면 된다는 말이 나돈다”라며 “그 4명만 포섭하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탓에 사법기관의 도움을 받아 적극적으로 가해학생을 처벌하려는 학부모도 늘고 있는 것이 교육계 현실이다.

이를 두고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법적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학교 내에서 ‘참교육’이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울산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지도와 훈육으로 선도할 수 있고 바른길로 가도록 하는 방법이 있음에도 학교폭력 자체에 휘말리기 싫어 이를 미숙하게 처리하는 교사가 많다”며 “학교폭력이 발생하기 전에 학생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원만한 교우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교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공정성 논란이 끊이질 않자 교육부는 학폭위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2020년 1학기부터 초·중·고등학교에서 열리는 학폭위를 교육청에서 진행토록 이관하고, 학교폭력을 은폐, 축소하려는 정황이 밝혀지는 학교의 경우 중징계를 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 개정법안은 현재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는 상태다.

개정안이 시행될지라도 교육계 문제를 교육청이 해결한다는 점에서 ‘제식구 감싸기’ 논란에 휩싸일 여지도 남아 있다. 교육청의 공정한 처분을 기대하려면 인사권 등의 불이익을 없애고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울산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교육과정내 학교폭력예방 어울림 프로그램을 활용해 공감, 의사소통, 갈등해결 능력을 기르는 평화로운 학급만들기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라며 "또한 학교폭력 담당교사와 담임교사 등을 대상으로 워크숍, 연수, 교육 등을 실시해 학교생활에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학교폭력 없는 행복한 학교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강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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