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인 척 ‘중국산 배관부품’ 1천억대 유통시킨 국내 최대 플랜지 제조업체 적발
국산인 척 ‘중국산 배관부품’ 1천억대 유통시킨 국내 최대 플랜지 제조업체 적발
  • 강은정
  • 승인 2019.07.0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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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정유설비 26개 업체 납품 ‘안전 빨간불’

중국산 플랜지를 국산으로 둔갑시켜 국내 시장에 1천200억원을 판매한 국내 최대 규모 플랜지 제조업체가 검찰에 적발됐다. 플랜지가 발전소, 정유설비 등에 사용되는 주요 부품이어서 국내 대기업들에 납품된 것으로 드러나 안전이 우려되고 있다.

울산지검은 국내 대표 플랜지 제조회사 A업체 회장 B(73)씨, 전 대표이사 C(68)씨, 현 대표이사 D(53)씨 등 7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대외무역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4일 밝혔다. 양벌규정으로 A업체 역시 함께 기소됐다.

플랜지는 관, 파이프 등을 서로 연결할 때 쓰는 부품으로 정유시설이나 석유화학시설 등 배관에 사용된다.

A업체는 2008년 6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10여년 동안 중국 등지에서 플랜지를 수입해 원산지를 국산으로 속여 1천225억원을 받고 국내 26개 업체에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2015년 7월부터 원산지를 조작한 플랜지 11억원어치를 해외 6개 나라에 수출한 혐의도 받고 있다.

A업체는 제품에 적힌 원산지를 그라인더로 긁어내고 A업체 로고와 ‘KOREA’를 새겨넣는 수법으로 원산지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 제품이 국내 발전소, 정유, 석유화학 설비 등 산업기간시설에 공급됐고, 시험성적서 역시 조작된 것을 확인했다.

일부 회사에서 플랜지의 원산지 조작 제품을 사들였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국산으로 교체한 사례도 있지만 대다수 현장에서는 산업현장에서 그대로 사용 중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검찰은 플래지에 대한 한국산업표준(KS) 규격이 없어 해당 제품이 거래될 당시 미국 규격을 준용해 이뤄진 안전성 검사에서는 문제없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울산지검 관계자는 “플랜지를 공급받는 기업이 제품 검수 과정에서 안전성을 검사했을 때,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그러나 원산지 조작 제품이 사용된 시설의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는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관계 행정부처에 수사결과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특히 울산지역에는 정유, 석유화학 시설은 물론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플랜지 사용처가 수두룩해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플랜지는 국산과 중국산의 품질 차이가 나더라도 단기간에 결함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특성이 있어 당장 불량이나 부적격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를 놓고 업계에서는 “중국산 플랜지가 이미 시장의 90%를 장악한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산 플랜지 완제품 수입은 비일비재하고 이를 국산으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시장가격 역시 중국산이 국산보다 10% 가량 낮은 수준이어서 이윤을 얻기에도 좋은 상황이 이러한 원산지 둔갑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가격을 우선적으로 하는 시장 상황이 이 같은 부정행위를 낳게 됐다는 볼멘소리도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중국산 제품 기능이 좋아져서 오히려 국산보다 좋다는 소리도 나온다”라고 밝혔다.

경쟁력을 키우기에는 업체들이 투자비용 대비 효율성이 떨어져 한계에 부딪히고, 수요처도 점점 줄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여 중국산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원산지 둔갑은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플랜지 영세업체들이 줄도산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업계의 현실”이라며 “시장 구조를 변화해서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한다”고 조언했다.

강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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