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6.10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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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농사가 풍년의 결실을 맺기 위해선 계절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제때에 심고, 관리하고, 거두지 못하면 일년 농사는 헛수고가 되고 만다. 장사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를 잘 파악해 선호도 높은 제품을 넉넉하게 준비해야만 높은 매상을 올릴 수 있다. 황금시간과 주력 제품에 대한 개념은 모든 장사의 기본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국내 최대 자동차 기업에서 이런 장사의 기본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없어서 못 판다는 현대차의 대형SUV 팰리세이드가 지금 이런 처지에 놓여 있다.

역대급 인기를 끌고 있는 팰리세이드는 현재 주문 적체가 심각한 상황이다. 얼마 전 현대차울산4공장 노사가 증산 협의를 통해 4월부터 생산을 늘렸지만 북미 수출 물량이 더해지면서 수요 대비 공급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까지 팰리세이드 누적 계약대수는 6만8천대, 출고 대수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주문하면 해를 훌쩍 넘겨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밀려 있다.

팰리세이드 고객 대기가 장기화되면서 회사는 좌불안석인데 노조는 수요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 회사 탓이라며 느긋한 모양새다. 예상이 실제 결과와 맞아떨어지기가 어디 쉬운가. 예측을 벗어났으면 신속하게 전략을 수정해서 대응하는 것이 상식이다. 오히려 팰리세이드는 좋은 쪽으로 예상치가 빗나간 경우라 현대차는 콧노래를 불러야 할 상황이다. 기대치보다 많은 주문에 가용한 생산력을 총동원해도 모자랄 판에 노조가 회사의 수요예측을 문제 삼으며 생산력 극대화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노조의 이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기다림에 지친 고객을 떠나게 만들어 회사와 노조, 고객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 상황을 초래한다.

팰리세이드는 대형SUV를 선호하는 미국 시장을 겨냥한 전략 모델로 현지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대형SUV의 격전장인 미국은 시장 규모가 국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팰리세이드가 미국에서도 잭팟이 터지면 물량 공급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여기에다 수입차에 관세 25%를 부과하는 미국의 무역확장법 위협도 해소되지 않고 있어 현대차로선 생산물량 확대와 관세 회피, 두 가지 이슈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해외생산을 검토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시장에서 팰리세이드와 경쟁하게 될 기아차의 대형SUV 텔루라이드는 전량 미국 조지아공장에서 생산중이다.

항간엔 현대차가 펠리세이드 고객 이탈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내공장 공동생산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현재 3공장에서 생산하는 아반떼와 5공장에서 생산하는 투싼 물량의 일부를 2공장에서 함께 생산하고 있는 것처럼 팰리세이드를 생산하는 4공장 노조가 협조하면 공동 생산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통상적으로 노조가 공동생산에 미온적인 이유는 생산물량이 넘쳐나면 특근이 그만큼 오래 보장되고 임금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공장에서 공동생산을 하게 되면 그만큼 자신들의 파이가 줄어든다는 논리인데 근시안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회사 전체의 매출과 이익이 늘면 근로자들에게 돌아갈 파이는 더욱 커지고 고용도 탄탄해진다.

현대차는 그동안 신차 맨아워 협의 지연 등으로 판매 시기를 놓쳐 경쟁사에 고객을 뺏긴 뼈아픈 경험이 있다. 노조는 고객 대기 기간 단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고객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길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 임단협이 어제 상견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단체교섭 시즌에 들어갔다. 임단협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이처럼 상식에 어긋나는 관행부터 하나씩 바로잡는 것이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노조가 장사의 기본조차 외면하면서 과도한 임금·성과금을 내놓으라 요구하면 설득력이 있겠는가. 위기 극복을 위해선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처럼 모처럼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노사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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