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 필 무렵
감자꽃 필 무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6.06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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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농업기술센터 유리온실에 하얀 감자꽃이 피었다. 동료직원 K여사가 감자꽃 한 움큼을 화병에 꽂으면서 “향이 참 좋다”며 “결혼식 부케로 사용하면 좋겠다”고 한다. 평소 같으면 감자꽃이 피었구나 하고 그냥 지나치거나 열매로 가야할 영양분이 꽃으로 가지 않게 꽃을 따주라고 했는데, 달리 보면 열매보다 꽃의 활용가치가 더 높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감자는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던 만큼 감자꽃이 피는 시기는 본능적으로 느끼기 마련이다.

“자주 꽃 핀 건/ 자주감자/ 파 보나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마나/ 하얀 감자//”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권태응 님의 시 ‘감자꽃’의 전문이다. 식민지시대에 ‘감자꽃’의 자주색은 일제를, 흰색은 한민족을 상징했다. 또 감자꽃은 창씨개명을 해도 그 뿌리는 변치 않는다는 민족자주의식을 담았다.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대표작 ‘만종’에는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발밑에 놓고 기도하는 장면이 나오고, 이들 부부는 그 바구니에 담겨있는 씨감자를 보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아니라 배고픔을 못 이기고 죽은 아기의 시체가 담겨 있었고, 밀레는 그 아기의 시체를 작품 속에 담았던 것이다. 부부가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 그림을 보고 큰 충격에 빠진 밀레의 친구가 몹시 우려하며 그림에 아기를 넣지 말라고 부탁한다.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시체의 그림을 덧칠한 뒤 감자를 그려 넣었고, 이 그림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배고픔을 달래주던 감자의 수확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그림으로 살짝 바뀌었던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장 프랑수아 밀레처럼 땀 흘리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농부의 모습을 진솔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 대표하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그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스스로도 말한다. 필자가 네덜란드의 반 고흐 박물관에 갔을 때도 맨 처음 만났던 것도 바로 이 그림이었다. 등불 아래 다섯 명의 식구가 낡은 탁자에 둘러앉아 감자를 먹고 있는 모습의 그림이다. 희미한 램프 불빛에 비친 회색조의 실내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식탁에는 찐 감자와 차 한 잔씩이 전부였다. 시대의 어려움을 진솔하게 보여주고자 했던 그림이다. 고흐가 표현한 배고프고 어두운 세상의 상징 ‘찐 감자’도 식탁에 오르기 전에는 고고한 자태의 감자꽃을 피웠을 것이다.

감자는 1570년경 잉카제국에서 약탈한 금은보화와 함께 스페인으로 건너갔다. 스페인에 전래된 감자는 ‘성서에 없는 작물’이라는 이유로 금기시되고, 주로 꽃을 감상하는 관상용으로 길렀다. 성경에 나오지 않고, 땅속에서 자라고, 거무튀튀한 색에 울퉁불퉁한 모양 때문에 ‘악마의 열매’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미개한 노예들이나 먹는 작물로 천대시한데다 감자를 먹으면 나병에 걸린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더 기피하게 되었다. 더욱이 조리법이 전해지지 않아 생으로 먹거나 제대로 익히지 않고 껍질째 먹은 사람들이 위장장애를 일으킨 사례가 많아 부정적인 인식은 확산되어 갔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달랐다. 감자가 프랑스의 빈민을 위한 중요한 식량이 될 수 있음을 인식했던 것이다. 감자를 국민의 양식으로 만드는 전략으로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로 하여금 감자꽃 장식 등의 이벤트를 통해 관심을 이끌게 하고, 파티를 열어 다양한 감자요리를 소개하면서 거부감을 없애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몇 년 후 프랑스에 닥친 대기근을 감자로 해결할 수 있었고, 그 공로로 그는 ‘감자의 아버지’로 추앙받기에 이른다.

감자가 원산지를 떠나 지구 곳곳으로 보급되는 동안 수많은 오해를 극복하고 현재는 4번째로 많이 먹는 대표적인 먹거리가 되었고, 특히 굶주린 인류의 구원에 기여한 공은 지대하다. 지구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벼, 밀, 옥수수의 꽃을 본 기억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옥수수는 수염이 암꽃이다. 길을 가다가 감자의 하얀 꽃이나 자주색 꽃을 본 기억은 있을까? 하얀 꽃이 핀 감자를 파보면 영락없이 하얀 감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윤주용 울산시농업기술센터 소장,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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