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산책] 다툼의 상대는 누구인가?
[법률산책] 다툼의 상대는 누구인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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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 시인의 대표작 ‘꽃’의 첫머리다.

이것도 직업병의 일종이겠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읽으면서도 필자는 자연스럽게 소송절차와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된다.

민사소송의 예를 들자면, 다툼의 상대방 당사자를 정확하게 지정하는 것과 관련한 것으로서, 이른바 ‘당사자 특정’의 문제가 있다. 민사소송에서 말하는 당사자 특정이란, 재판의 효력이 미치는 인적 범위를 확정하고 강제집행의 대상이 되는 자를 특정하기 위하여, 그 성명과 주소 등을 정확하게 기재해서 특정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소액사건의 경우에는, 의뢰인들이 상대방의 전화번호 등 일부 정보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때 소송을 통하여 금전채권 등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장을 접수한 후 사실조회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야 한다.

상대방의 전화번호만 알고 있는 경우에는 통신사에 대한 사실조회를 신청하면 되고, 계좌번호를 알고 있는 경우라면 해당 금융기관에 계좌 정보에 대한 사실조회를 신청하면 될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소액사건의 경우에 빈번히 이루어지는 지급명령에 대하여는 사실조회 절차를 이용할 수 없으므로, 상대방 당사자의 인적사항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본안소송인 민사소송 절차로 진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의외로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문제가 되는 상대방이 주식회사의 형태인 경우에, 해당 주식회사에 대한 문제와 그 실질적 소유자인 대표이사 개인에 대한 문제의 구별을 혼동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현실에서는, 규모가 영세한 업체의 경우 주식회사와 그 대표이사의 구별이 사실상 유명무실한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법률적인 측면에서는 주식회사와 그 상법상 기관에 불과한 대표이사 개인은 전혀 별개의 법인격을 가지고 있다. 별개의 법인격이란, 말 그대로 법적으로는 전혀 다른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예를 들어 기존에 개인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거래처의 사장이 “이제 사업을 좀 더 키울 필요도 있고 해서 사업자 형태를 주식회사로 바꾸려고 한다”고 하는 경우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원칙적으로만 보자면, 기존에 거래하던 자와는 법률상 전혀 다른 거래처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해당 거래처에 대한 미수금이 있는 경우라고 한다면, 개인이 지고 있던 채무를 설립 후의 주식회사에서 책임진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즉, 주식회사 대표이사 지위를 기재한 서면으로 위와 같은 사실을 확인받음으로써 분쟁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상담 과정에서 경험한 사례를 하나 예로 들어보자. 거래처의 형태가 ‘개인사업자’에서 ‘주식회사’로 변경된 이후 주식회사의 주주와 대표이사가 동시에 다른 사람으로 변경되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전에 개인사업자이던 당시에 경영지원금 명목으로 지급받은 금액이 있었는데, 이에 대하여 사업자 형태가 주식회사로 변경된 이후 해당 사업장을 인수한 주주 겸 대표이사가 이를 더 이상 갚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문제가 되었던 사례이다.

복잡한 법리는 생략하고 해당 사례를 설명하자면, 결론적으로, 설립 후의 법인이 이전 개인사업자 단계에서의 채무를 인수한 사실을 주장함으로써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었다. 만약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주식회사 대표이사 명의로 작성된 별개의 문건이 있었다면 추가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손자는 손자병법에서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라고 하였다. 너무나 훌륭한 말씀이라 반박조차 생각하기가 힘들다. 다만,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툼을 피할 수 없다면, 상대방 당사자를 특정하고 올바른 방향을 향하여 전략을 세우는 것이 차선책이 될 것이므로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류선재 고래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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