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총각 장가보내기’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26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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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날 때마다 매달리는 TV 프로그램 중에 ‘다문화 고부열전‘이란 게 있다. ‘한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고부갈등 해소를 위한 역지사지 힐링 여행 프로그램….’ 제작사인 EBS(한국교육방송공사)의 자가 소개 글이다. 수적으로는 도회지나 어촌보다 농촌이 무대인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제작의도를 생각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뒤끝은 항상 ’헤피 엔딩‘이다. 한국인 시어머니와 외국인(주로 동남아) 며느리의 갈등적 일상을 다루다가도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며느리의 고향여행에 맞춰진다. 그 과정에 외국인 며느리와 친정어머니가 눈물을 찔끔거리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끝내는 부둥켜안고 서로를 이해한다는 쪽으로 끝맺음하기 일쑤다.

하지만 시청 도중에는 속된말로 ’열 받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대개는 고부(姑婦) 양자 혹은 어느 한쪽의 무지와 무례함, 고집불통이 스트레스의 불씨가 되곤 한다.

그러던 차에 비슷한 공감대를 지난 것으로 보이는 한 카페지기를 인터넷에서 우연히 만났다. 엄살 여부까지 확인할 순 없으나 그 또한 그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열을 받는다고 씩씩거렸다. 흥미로운 것은 상소리도 예사로 내뱉는 이 양반이 다문화 부부 22쌍의 신상명세를 나이 중심으로 분류해 놓은 일이다. 어떤 결론이 나올까 싶어 전자계산기 도움까지 받아가며 분석을 시도했다.

외국인 아내 22명의 평균나이 28.5세(최저 21~ 최고 41), 한국인 남편 22명의 평균나이 49.1세(최저 33 최고 56)…. 그 다음은 눈을 감아도 나오는 다문화 부부의 나이차이로, 자그마치 16.4세다. 하긴 ‘사랑에 국경과 나이차가 무슨 상관?’ 하는 말도 있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다. 물론 이 나이는 국제결혼 당시의 것이 아니다. 또 이 자료만으론 한국 체류기간이 얼마인지도 전혀 알 수 없다.

걸쭉한 입심의 카페지기가 내린 결론은, 참고 정도는 해도 무방하지 싶다. “대부분 20대 초·중반에 타국으로 시집와 아이 낳고, 시부모 모시고, 살림과 농사일도 하며 그렇게 살아감. 우리나라에서 20대 초·중반의 딸을 나이 많고 능력 없고 시부모 모셔야 하고 농사지으며 살아야하는 그런 집에 시집보내는 부모가 세상 어느 천지에 있을까….” 따지고 보면, 다문화 고부의 갈등은 개인성격보다 문화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더 크지 싶다.

물음표가 쌓이던 중에 뜻밖의 기사를 접하고 깜짝 놀랐다. <“성차별·매매혼 조장”…지자체, 농촌총각 국제결혼 지원 끊는다>는 제목의 5월 25일자 기사였다. 여성가족부가 ‘부정적 인식 확산’을 이유로 지난해 전국 22개 시·군에 재검토를 요청했다는 소식도 같이 들어있었다. 여가부의 이 같은 판단 뒤에는 여성단체의 ‘매의 눈’이 숨어있었다.

기사에는 경남여성단체연합 관계자의 비판적 시각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농촌총각 국제결혼 지원 사업’을 가리켜 “가부장적 관습을 답습하는 시대착오적 사업이고,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적 요소가 들어있으며, 성평등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사업”이라고 잘라 말한다. “비슷한 사업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중앙정부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빠뜨리지 않는다.

농촌총각이 외국여성을 아내로 맞아들이면 지자체는 얼마를 지원하게 될까? 충북 영동군에서는 2006년 이후 20∼55세 농업인이 결혼하면 1인당 300만원씩 지원해 왔다고 한다. 앞으로 이마저 끊기면…? 인구유입도 주춤해질 것은 뻔하다. 그렇다고 근시안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 말이 더 이상 안 나올 때쯤 다시 받아들여도 늦지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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