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제의 자연산책] 초롱을 닮은 꽃
[조상제의 자연산책] 초롱을 닮은 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2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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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초롱꽃을 관찰하는 모습.
아이들이 초롱꽃을 관찰하는 모습.

 

초롱을 닮은 꽃이 있습니다. 초롱에는 청사초롱, 홍사초롱, 금강초롱이 있습니다. 청사초롱은 초롱의 종류이면서 꽃의 이름이고, 홍사초롱, 금강초롱은 초롱꽃의 이름입니다.

초롱, 아시죠? 손전등이 없던 시절 깜깜한 밤길을 갈 때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외피를 씌운 직육면체의 옥외용 등.

초롱의 외피는 한지와 비단을 사용합니다. 그래서인지 초롱꽃 꽃잎의 질감은 마치 한지 같고, 금강초롱꽃 꽃잎의 질감은 마치 비단 같습니다.

우리 학교에도 곳곳에서 초롱꽃은 볼록한 꽃봉오리를 맺고 기다란 종 모양의 아름다운 꽃을 우르르 쏟아내려 하고 있습니다. 청아한 종소리가 들릴 듯한 초롱꽃에 개미들이 끊임없이 드나듭니다. 초롱꽃은 개미들의 먹이창고이자 놀이터입니다. 아이들 또한 개미와 하나 되어 재미에 푹 빠집니다. 아이들이 워낙 좋아해서 초롱꽃은 꽃을 피우고도 못내 아쉬워 다시 한 번 꽃을 피웁니다. 아마 초롱꽃이 없는 학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초롱꽃에는 섬초롱, 금강초롱, 흰금강초롱, 검산초롱, 백두산초롱, 석립초롱, 청강초롱, 홍초롱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최근 시중에는 다양한 색깔의 개량종 초롱꽃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섬초롱은 ‘섬’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섬은 어떤 섬을 말할까요? 제주도, 울릉도, 완도 중 어느 섬일까요? 식물은 향명, 학명, 영명을 보면 그 식물의 특성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하, 섬초롱은 그럼 ‘섬’에서 자생하는 식물이군요. 그럼 어느 섬인지 섬초롱의 학명을 한번 볼까요? 섬초롱꽃의 학명은 ‘Campanula takesimana Nakai’입니다. ‘Campanula’는 섬초롱꽃의 속명으로서 라틴어로 쓰도록 되어 있고, 꽃이 종처럼 생긴 꽃을 총칭하는 말로 제일 앞 글자는 대문자로 써야 합니다.

문제는 takesimana(다케시마나) Nakai입니다. 속명 다음에 쓰는 종소명은 주로 그 식물이 발견된 지명(地名)을 쓰고 형용사형으로 씁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 식물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쓰죠. 그렇다면 섬초롱꽃은 Nakai가 다케시마 즉 독도에서 발견했다는 이야기인데. 현재 일본에서는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지만 나카이가 섬초롱에 이름을 붙일 때만 해도 울릉도와 독도를 통틀어 다케시마라고 불렀습니다. 이제는 아시겠죠? 식물이름 앞에 ‘섬’자가 붙은 식물 중에 종소명이 다케시마나라면 그 식물은 울릉도에서 발견된 식물입니다.

그런데 같은 ‘섬’자가 붙은 식물이라 해도 모두가 울릉도에 자생하는 식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음 식물을 볼까요? 섬쑥의 ‘섬’은 섬인데 어디일까요? 다시 섬쑥의 학명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섬쑥(Artemisia hallaisanensis Nakai) 아! 섬쑥은 종소명이 한라산이군요. 그럼 섬쑥은 자생지가 어디인지 아시겠죠? 제주도입니다. 일본의 식물학자 나카이가 울릉도에서 채집한 식물에는 다케시마를 종소명에 붙이고, 제주도에서 발견된 식물에는 종소명에 한라산을 붙이거나 일본 이름에 ‘탐라’나 ‘사이슈(제주)’를 붙였습니다.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을 발간할 때 울릉초롱꽃, 제주쑥 등 울릉도와 제주도를 구분하여 이름을 붙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슬픈 것은 우리의 특산식물에 이름을 붙인 자가 일본인 ‘나카이’이군요.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

나카이는 1907년 도쿄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식물분류학을 전공합니다. 1914년 조선을 강점하는 데 앞장선 인물인 초대 조선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의 도움으로 조선총독부 소속 식물조사원에 임명됩니다. 1942년까지 28년간 17차례에 걸쳐 제주도, 울릉도, 완도, 금강산 등 조선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식물 2만여 점을 채집하고 한국 특산식물 527종 중 327종의 학명에 자신의 이름을 올립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나카이 이 자가 금수강산에만 피는 우리 꽃. 금강산에서 발견한 청보라색의 아름다운 금강초롱. 그 꽃을 자신이 식민지 수탈을 위해 마음껏 조선의 방방곡곡을 유린하게 도와준 하나부사에게 바친 것입니다. 어떻게 바쳤냐구요? 금강초롱의 학명을 한번 볼까요?

금강초롱(Hanabusaya asiatica Nakai). 나카이는 학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리고 그 식물의 속성을 나타내는 속명이 들어갈 자리에 하나부사를 끼워 넣습니다. 그리고 발견 장소도 아시아로 얼버무리고 넘어갑니다. 그리고 금강초롱을 한때는 하나부사의 이름을 따 화방초(花房草)라고도 했습니다.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세계식물명명규약을 고쳐서라도 창씨개명된 우리의 풀꽃들이 진정하게 해방되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조상제 범서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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