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앞에서 떼인 주차위반 딱지
백악관 앞에서 떼인 주차위반 딱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0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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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한전은 원자력기술 도입 차원에서 많은 직원들을 해외로 출장을 보내 교육을 받게 했다. 그 무렵 복지수준은 개인 체재비와 가족 왕복비행기표까지 제공할 정도로 높았다. 그 덕분에 가족동반여행 붐이 일어났다. 하지만 필자는 자녀가 수험생들이어서 가족을 방학 중에나 초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첫 주는 주재국인 캐나다에서 보내고 나머지 한 주는 미국 뉴욕과 워싱턴을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비자는 쉽게 나왔다. 장거리 여행에 혹시 고장이나 안전사고라도 나면 안 되겠다 싶어 개인차량 대신 멋진 밴 차량을 선택했다. 보험료를 제외한 순수 렌트비는 180달러였다. 체류에 필요한 일상용품, 침낭, 간단한 조리도구를 준비했고, 숙소는 지도상에 나와 있는 공공 야영장소를 이용하기로 했다.

당시 가격으로 하루 10달러만 내면 취사·목욕시설은 물론 주차·텐트공간까지 얻어 일주일을 별 불편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매일 여행지에서 돌아올 때는 저녁 찬거리만 장만했다가 취사를 하면 비용도 줄이고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첫날은 미국 내 한인여행사를 통해 당일치기 관광코스를 구경했고, 다음날부터는 지도를 보며 직접 찾아다니는 방법을 택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 당시 백악관 앞 도로상에서 주차위반 딱지를 떼이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대통령집무실이 정면으로 빤히 보이는 도로상에 많은 차들이 줄지어 서 있기에 아무 의심 없이 주차를 시킨 다음 몇 시간이 지나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장사진을 이루었던 그 차들은 다 어디로 가고 내 차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게 아닌가? 다른 차는 몽땅 견인해가고 나만 캐나다 손님이라고 특별히 봐 주는가 싶어 내심 “예의바른 나라”라고 칭찬까지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앞창에 붙어있던 ‘주차위반’ 딱지를 보는 순간 환상은 일시에 사라지고 말았다. 필자는 ‘멋진 백악관 선물’ 정도로 여기고 껄껄 웃으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캐나다로 돌아온 후에는 잠시 갈등도 겪기도 했다. “범칙금을 낼까? 말까?” “떼먹으면 어찌 되겠나?”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았다. ‘지구 끝까지 추적해서 받아간다’거나 ‘비자 재발급 때까지 천연덕스럽게 기다린다’는 말이 들렸고, 끝내 자진납부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

꿈같은 일주일이 후다닥 지났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간다’는 속담처럼 필자는 취미의 하나인 ‘소품 수집’을 위해 헤리스버그라는 도시에 있는 북미 최대의 골동품가게에 들러 마음에 쏙 드는 작품 몇 점을 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홀가분한 마음에 엑셀을 힘껏 밟았다. 잘 알다시피 이 나라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시속 60마일(96km)이다. 우리나라 운전자라면 거의 기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 그래서 필자는 습관대로 차를 시속 110~120km로 몰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뻥 뚫린 도로 위를 재미난 여행담을 나누며 달리는데 느닷없이 경찰차 한 대가 지나치면서 정지신호를 보내는 게 아닌가?

얼떨결에 길가에 차를 세우니 대뜸 하는 소리가 “귀하는 과속을 했고 몇 시간을 따라오는데도 속도를 줄이지 않아서 단속을 했다”는 거다. 더욱 가관인 것은 나의 변명이었다. “캐나다 손님이고 규정속도를 유지했다”고 계속 우겼다. 그랬더니 경찰관은 “앞으로 1시간을 더 지켜볼 테니 제한속도를 지켜달라”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는 정말 1시간이나 거머리같이 따라오더니 마침내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다. 신사다운 그 경찰관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우리나라는 단속카메라나 함정단속에만 눈에 불을 켜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북미에서는 순찰차가 수시로 오고가면서 과속은 아예 꿈도 못 꾸게 만든다. 나이아가라 국경검문소를 넘기 전에 겪은 추억거리였지만 우리도 본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미의 모든 고속도로는 무료이므로 어디든 진출입이 자유롭다. 우리도 대도시 주변에 공공야영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목적지 선만 따라가면 국제미아가 되지 않도록 현가식 도로표지판 외에 도로바닥에도 행선지를 표시해두면 어떨까? 교통경찰관이 24시간 밀착운행하면서 과속을 원천 차단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운전자들도 저마다 법을 스스로 지키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박재준 NCN 전문위원, 에이원공업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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