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경험치
편집장의 경험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4.17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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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아버지는 울진에서 오징어잡이를 하다가 청송에서 가내수공업 수준의 작은 숯 공장을 운영하던 중 외할아버지의 권유로 공단이 조성되고 있던 울산에 정착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2남3녀를 두었고, 오랫동안 울산항 부두에서 하역 근로자로 일했다. 어릴 때 부곡에서 태어난 필자는 예전부두 가는 길목 한국비료가 있던 길 초입의 만수밭에서 자랐다. 그곳은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유명해진 남구 신화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나는 철없던 어린 시절 따뜻한 봄볕 드는 흙담에 기대어 해바라기처럼 햇살을 즐겼던 기억이 선연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10살 무렵 초등학교 시절부터 선암저수지 가는 길목의 야음시장 구역에서 신문 배달을 했다. 그때 신문은 지면이 아주 얇은 편이어서 신문다발 한 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동네를 순찰하듯 두어 시간 다니다보면 배달 업무는 마감이었다.

좀 더 커서는 야음지하도가 있던 곳에서 한국일보를 배달했는데 지국장은 업무에 서툴다고 한 번씩 ‘빳다’로 엉덩이를 때리곤 했다. 군대에 가기 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조선일보 수암지국에서 총무 일을 했고, 제대하고 나서는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지국에서 새벽 신문배달과 수금에다 판촉사원 안내 역할도 맡았다. 나중에는 조·중·동 같은 메이저급 신문 판매팀에서도 10년 가까이 근무했고, 지역신문 지국장과 경향신문 지국장도 거쳤다.

배달과 수금, 판매와 같은 일련의 업무는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감당할 수 있었기에 필자는 따로 운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20년 가까이 승용차를 타고 다니다보니 예전에 업무를 보면서 활동할 때는 상당한 걸음걸이가 필요한 것을 알게 됐다. 따로 운동을 하거나 걷기를 하지 않으면 슬슬 중년의 뱃살이 친구하자며 찾아온다는 것을 근자에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조간신문 4부를 구독하고 있어서 하루에 최소 1시간 이상은 신문읽기에 시간을 할애한다. 우리의 인터넷 환경이 최상이어서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신문을 보고 있지만, 근자에는 종이신문과 영상이 겹쳐지는 과도기적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다가 필자는 문득 유튜브에서 ‘박 총무의 신문 읽어주기’라는 채널을 개설한다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종이신문 구독자가 갈수록 줄고 신문읽기를 어려워하는 세태인 만큼 신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논리적 사고, 언어구사의 자유로움 등 나만의 다채로운 신문읽기 노하우를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이다. 필자는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고 유튜브 방송을 하고 싶었지만 개인적 사정으로 좀 미루어지게 됐다. 그런데 그 사이 부산에서는 사투리방송이 대박을 치고 있는 게 아닌가.

울산에서도 사투리방송을 따라하고 있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사투리방송은 필자가 히트할 거라는 예감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선수를 놓치고 만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는 항상 활개를 치기 마련이고, 그래서 중요한 것이 ‘선점’이다. 어쨌든, 운명처럼 신문의 잉크냄새와 함께 하게 된 인생에서 필자는 편집장 7년차 경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과 비상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의 원석을 찾아 나서는 중이다.

가령 은퇴한 퇴직자를 기리는 도서를 발간한다면 은퇴식은 물론 출판기념회도 겸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 이모작 시대에 그런 일은 당사자들에게 매우 유익할 것이다. 또 글쓰기 교실도 개설해 저자를 꿈꾸는 이들이 책을 펴내는 데도 도움을 주고 싶다. 이처럼 찾아낸 원석을 다이아몬드로 바꾸겠다는 꿈이 어느 날 마침내 이뤄진다면 필자가 그동안 소중히 간직해온 편집장의 경험치는 값진 전리품으로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

박정관 굿뉴스울산 편집장, 울산누리 블로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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