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목욕탕] 약수터·폭포에서 즐긴 물놀이·목욕
[우리동네목욕탕] 약수터·폭포에서 즐긴 물놀이·목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4.14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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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목욕탕⑩ 목욕탕 대신한 울주의 물놀이 명소
울주군 웅촌면 석천리 초천 마을에 있는 ‘초정 약수터’.
울주군 웅촌면 석천리 초천 마을에 있는 ‘초정 약수터’.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 대부분의 울산 시민들은 태화강과 동천강, 회야강 등에서 목욕을 했다. 계절적으로 여름밖에 할 수 없고 그나마도 여자들은 밤에 우물가에서 목욕을 했다. 대신 여름에는 물놀이를 즐겼다. 울주에는 물놀이를 위해 찾았던 약수터와 폭포가 여럿 있다.

◇ 지잔 약수터= 울주군 범서읍 중리 지지마을에 있었다. 지형적으로 동편에는 국수봉, 서편에는 연화산이 자리 잡고 있다. 약수터의 물은 연화산에서 발원해 산자락으로 흘러나오는데 전설에는 신라시대부터 있었다.

인근 마을 사람들은 지잔 약수터를 ‘지잔 물탕’이라고 불렀는데 사람들이 약수도 마시지만 폭포수에 물을 맞는 것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울산과 경주 사람들 중 여름이면 이곳에 물놀이를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1950년대 후반 경주 내동에서 살았던 한영문(70)씨는 “당시만 해도 경주에는 물놀이를 할 곳이 많지 않아 아침밥을 일찍 먹은 후 도시락을 싸 지잔물탕에 와 폭포수 아래서 물을 맞은 후 돌아가면 무더운 한 여름이 지나가곤 했다”고 회상했다.

이 약수터가 쇠퇴하게 된 것은 1970년대 중반 약수터 위로 길이 확장되면서 수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붉은 벽돌로 된 폐허의 여관 건물과 감나무가 보일 뿐이다.

◇ 석천리 초정 약수터= 웅촌면 석천리 초천 마을에 있는 약수터로 역사가 오래됐다. 마을 이름을 따 ‘초천 약수터’라고도 불렀다.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웅촌과 웅상은 물론이고 언양과 남창 심지어 양산사람들까지 이 약수를 마시겠다고 몰려왔다. 이들을 대상으로 마을 사람들이 국수와 막걸리를 가져와 팔기도 했다. 나들이를 온 사람들 사이에 패싸움도 잦아 여름에는 경찰 순찰차가 항상 대기를 했다.

약수가 피부병에 좋다는 소문이 나 종기 환자들이 많이 모였다. 이 약수는 철분이 많아 약수터 인근의 돌이 붉고 밥을 하면 밥이 시퍼렇게 됐다. 또 닭백숙을 하면 기름기가 빠졌다.

초천약수터가 사양길에 들어선 것은 울산이 산업화 되는 70년대부터다. 약수터가 있는 하상에서 골재 채취가 시작되다보니 자연히 약수터가 하상보다 낮아져 물이 오염돼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줄어들게 됐다.

◇ 해운폭포= 서생면 서생포 왜성 인근에 있다.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서생면 주민들과 온산읍 강양리 주민들이 여름이면 이 폭포로 몰려와 물놀이를 즐겼다.

이 물은 신경통에 효험이 있고 피부병이 낫는다는 말이 옛날부터 전해 와 신경통이 있는 어른들과 피부병이 있는 중년 아주머니들이 많이 찾았다. 여름철 땀띠로 고생했던 사람들 중 이곳에서 물을 맞아 효험을 보았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때 서생의 명소였지만 사람들이 찾지 않게 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다. 이때부터 절골을 중심으로 상수원이 개설되면서 물이 줄어들게 되자 자연히 해운폭포도 물살이 약해져 폭포로서 기능을 못했다. 이 무렵 전국적으로 새마을사업이 시작되면서 폭포 인근에도 목욕탕이 생겨나는 바람에 폭포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현재 이곳은 폭포의 흔적은 있지만 물이 흐르지 않아 고여 있는 물이 없다. 글·사진=울산시문화원연합회 ‘울산의 목욕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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