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목욕탕] 배수 원활한 최적의 입지 ‘호계샘물탕’
[우리동네목욕탕] 배수 원활한 최적의 입지 ‘호계샘물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4.07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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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목욕탕 ⑨ 부산탕과 호계샘물탕 (2)
호계샘물탕 전경.
호계샘물탕 전경.

 

김진호 사장은 목욕탕의 입지조건에 맞는 땅을 소문내지 않고 보러 다녔다. 무엇보다 배수가 원활해야 했기 때문에 하천이 가까이 지나는 곳을 살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곳이 현재 ‘호계샘물탕’ 자리다.

소유주를 수소문하니 대구에 살고 있었다. 직접 찾아가서 땅을 사고 싶다고 했더니 시가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을 요구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절충 끝에 시가 5~6만원의 땅을 8만원에 계약했다. 모친과 상의해 마동의 땅 일부를 처분하고, 그동안 모아놓았던 돈을 전부 투입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어느 날, 장인이 그를 불렀다. “자네가 목욕탕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무슨 돈으로 짓느냐. 돈이 모자라거든 이 땅을 팔아서 쓰라”고 하면서 두 필지의 땅을 내놓았다.

그 땅을 판 돈을 보태어 목욕탕을 완공할 수 있었다. 건축허가를 받고나서 이종 누나에게 부산탕을 인수인계했다.

건평 120평(목욕탕 100평, 굴뚝 등 시설물 20평)에 지하수를 팠다. 목욕탕에는 사우나 시설도 조성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배관은 전부 스테인리스나 동 파이프로 시공했다.

살림집은 목욕탕 옆에 공사장 창고로 쓰던 슬레이트집에 마련했다. 건물이 무허가여서 벌금을 물었다.

1985년 11월 16일 목욕탕을 개업했다. 창업을 작심한 지 8개월 만이었다. 사업자등록은 12월 3일에 마쳤다. 개업하고 나니 사람이 밀려들었다. 남녀 탕에 쓸 바가지 큰 것과 작은 것 100개씩을 준비했지만, 주말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1천~1천500명이 드나드는 주말이나 명절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한 사람이 나가면 한 사람이 들어올 정도였다. 목욕하다가 한눈이라도 팔면 누군가가 목욕용 바가지를 집어갔다. 목욕탕 물을 데우기 위해 화부와 함께 화목용 나무를 열심히 잘랐다. 세신사까지 거들었지만, 저녁이면 녹초가 됐다.

돈을 셀 겨를조차 없어 돈뭉텅이를 구석구석에 숨겼다. 그렇게 3년을 죽어라 하고 일에 매달렸다. 고생은 했지만, 5천만원 정도의 부채를 갚고 목욕탕 옥상에 살림집도 지었다.

그러나 화목이 문제였다. 공해문제도 그렇고, 그보다 조금은 편해지고 싶어 연료를 BC유로 바꿨다.

치명적인 문제는 겨울철에 발생했다. 기온이 낮아지니 기름이 굳어져 분사되지 않았다.

보일러실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료를 다시 바꾸기로 했다. 예열하지 않아도 되는 BA유로 바꾸고 버너도 교체하였다. 1만2천ℓ 탱크 사용 허가와 위험물취급 자격도 취득해 목욕탕을 운영하다 2005년 12월에 다시 가스로 교체했다. 호계 큰 길에 액화천연가스(液化天然 Gas, LNG) 라인을 가설할 때였다.

처음 개업 당시 400원이던 목욕비가 지금은 성인 6천원, 경로우대 5천500원, 소인 4천원이다.

2000년 이후 가정마다 샤워시설이 생기면서 목욕 수요자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특수탕이나 시설을 고급화해 차별성을 보이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30여년 운영해 온 동네목욕탕이어서 그런대로 유지를 하고 있지만, 이제 시작하는 업체는 투자비에 비해 수익을 내기가 힘든 구조다. 해수탕, 유황탕 등은 어느 정도 영업이 되지만, 일반 목욕탕은 장담할 수가 없다.

그가 목욕탕을 시작한 후 농소1동과 2동에 신천탕, 청호탕, 호수탕, 약수탕 등이 차례로 개업을 했지만 개업 5년 전후로 모두 실패했다.

글·사진=울산시문화원연합회 ‘울산의 목욕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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