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교수의 라오스 여행기 ①
유 교수의 라오스 여행기 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2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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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날 -

갑작스럽게 출발을 결정한 탓에 버스의 맨 뒷좌석, 그것도 28번 자리를 겨우 차지했다. 급제동을 걸면 저절로 기사에게 뛰쳐나가야 할 바로 그 자리다. 그러나 좌우로 열리는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흰 구름이 둥둥 떠가는 푸른 하늘 아래로 봄이 오는 소리가 따뜻한 햇살에 자분자분하다. 앞쪽의 승객들을 내려다보는 자리지만, 전방의 차창으로는 채 20m도 내다보이지 않는다. 마치 내일의 일정처럼 막막하다. ‘기대 반, 두려움 반’이 딱 맞는 표현이다.

길이 길을 잇고 다시 이어가다가 마침내 도착한 공항이다. 우리나라의 육로를 뒤로 하고 라오스의 길로 이어가기 위한 곳이다. 하늘의 길을 여는 시발점이다. 배낭여행이 이번 출국의 컨셉이다. 여행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가는 길이다. 물론 첫 시도지만 34명이 함께 하는 길이기도 하다. 공항으로 오는 동안 나는 벌써 치과의사 박세당에게 서너 명의 동료들을 소개받았다. 모두가 개성미 넘치는 화가들이다. 그들은 ‘그림 읽어주는 남자와 33인의 화가’라는 책을 통해 슬그머니 다가왔다. 이 든든한 후원자들은 이번 여행에서 좋은 벗이 되리라. 모두가 반갑고 고마운 그래서 유쾌한 여행길의 시작이다.

- 둘째 날 -

‘어머니의 강’이란 이름을 지닌 메콩강. 총 350km나 되는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이다. 티벳에서 발원하여 중국을 거쳐 미얀마ㆍ태국ㆍ라오스ㆍ캄보디아ㆍ베트남을 관통하는 세계에서 12번째로 긴 강이다. 조식을 마치고 메콩강변을 걸어서 도심으로 들어갔다. 건기(乾期)인데도 엄청난 양의 물이 도도하게 흐른다. 아직은 미개발의 상태로 남은 누런 강물이다. 몇 채의 수상가옥이 물가에 나앉았다. 우기(雨期)에는 섬이 되고 작은 언덕 위에, 드문드문 서 있는 집들이 외롭다. 한세상 먹고 산다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말인가.

심심한 강물 구경 끝에 대통령궁을 지나 허 파 깨우 사원과 맞은편의 왓 시 사켓 사원을 들렀다. 800만 인구 중에 불교도가 90%를 넘는 나라답게 곳곳에 사원이 흔하다. 란쌍대로를 걷다보니 이곳은 가을분위기가 물씬하다. 붉은 낙엽과 함께 짬빠꽃이 길가에 나뒹군다. 향이 강렬한 흰색 꽃으로 라오스의 국화(國花)다. 꽃말은 ‘축복 받는 사람’이다.

흐린 날씨가 개면서 슬슬 더워진다. 파투사이로 오르기 전에 아이스크림 하나로 열기를 식혔다. 그런데 이곳 아이스크림이 참 맛있다. 파투사이는 프랑스 개선문을 본떠 지은 구조물인데 멀리 1km 남짓 뻗은 란쌍대로 끝에 ‘화이트하우스’로 불리는 대통령궁이 우뚝하다. 란쌍은 라오스가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전에 존재하던 왕조의 이름이다. 비엔티엔의 도심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당혹스럽다. 여행안내 책자에 따라 대충 짠 스케줄보다 내 행보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느린 걸음이 가장 빠른 모양이다. 그러나 기왕에 내친 걸음을 어이하랴. 역시 시간을 죽이기에는 그냥 천천히 걷는 수밖에 없다. 중간 중간 길가에서 구운 바나나와 옥수수도 사 먹고, 카페에 들어가 라오스 커피도 마셨다. 재래시장에 들러 두어 종류의 열대과일도 사먹었다. 도중에 몇몇 사원과 공원에서 이따금 더위를 식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금빛 찬란한 탓 루앙 불탑이다. 작년에 ‘라오스 관광의 해’를 기해 새로 금을 덧씌웠다. 오후의 더운 햇살이 이울기에 다시 매캐한 도로를 따라 매콩강의 야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맥주잔에 붉은 저녁 해를 담갔다. 주홍이 아니라 아예 홍적색으로 빛나는 인상적인 태양이다. 맥주 몇 병으로 갈증을 재우고 다시 강을 따라 호텔로 돌아왔다. 강물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몸을 씻는 중이었다. ▶②편으로 이어짐

<유영봉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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