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외침을 기억합니다!
그날의 외침을 기억합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2.25 23: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오늘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이는 1919년 3월 1일 대한의 자주독립을 위해 3·1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린 「독립선언서」의 첫 문장이다. 일본제국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국권을 침탈, 잔혹한 지배를 이어오고 있었다. 교통이 발달한 곳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농촌 등지로 전파되면서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된 3·1만세운동은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참여하는 인원과 계층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운동의 양상도 비폭력 시위에서 폭력투쟁으로 탈바꿈했고, 국외로도 확산되어 독립시위는 만주·연해주·일본·미국에서도 벌어졌다.

만세운동이 확산될수록 일본제국은 이를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화성 제암리·천안 아우내·정주 곽산·남원 광한루·익산 이리 등 전국 각지에서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면서 학살을 저질렀고, 시위자들을 체포해 가혹한 고문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만세운동이 있었음에도 조선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이 세계2차대전의 패전국이 되면서 독립을 하게 된다. 그러나 3·1운동이 곧바로 조선의 독립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독립일인 8월 15일처럼 3월 1일을 국경일로 정해 기리는 것은 3·1만세운동의 의미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3·1만세운동은 지식인과 학생뿐 아니라 노동자, 농민, 상공인 등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폭넓게 참여한 대규모 항일운동으로 독립운동사에서 커다란 분수령을 이루고, 독립운동을 체계화·조직화·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중들은 3·1만세운동에 참여하면서 민족의식과 정치의식을 높일 수 있었고, 이는 1920년대에 다양한 사회운동과 조직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3·1만세운동은 일제의 식민통치에도 영향을 미쳐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바꾸게 했고, 중국의 5·4운동과 인도 간디의 비폭력·불복종운동, 이집트의 반영자주운동, 터키의 민족운동 등 아시아와 중동지역 민족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올해는 3·1만세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많은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다. 3월 1일 서울 광화문 3·1절 기념식장에서 출정하는 ‘독립의 횃불 전국 릴레이’ 행사가 우리 고장 울산에서는 3월 16일 오후 3시 성남동 젊음의 거리에서 진행된다. 기관·단체장, 시민, 학생 등 주자 100명이 참여해 횃불을 봉송하고, 독립선언서 낭독, 기념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밖에도 ‘독립유공자의 집’ 명패 달아드리기, 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사, 울산항일독립운동기념탑 건립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3·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그 당시의 뜨거웠던 함성을 들어보았으면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항상 기억하고 기록해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향한 그날의 외침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박세광 울산보훈지청 참전보상팀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