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소나타
광화문 소나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2.06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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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울 광화문을 걸어본다. 벌써 몇 년이 흘렀는가. 생각해보면 반백년이 다 된 것 같다.

대학 신입생 때의 광화문을 생각하면 말이다. 광화문 뒷골목 재수학원에서 시련을 겪었던 그 때를 회상해보면 감회가 무척 새롭다.

지금 그 길을 걷는다. 그 때 광화문 네거리의 코너에, 주로 한국영화를 상영했던 국제극장은 이제 보이질 않는다. 동아일보 본관 건물은 생뚱맞게 박물관과 갤러리로 변했다.

저어기 사통팔달 큰 도로 위에는 이순신장군 동상이 근엄하게 서 있고 그 뒤 세종대왕 동상은 자애로이 세종로를 바라보고 있다. 선명히 보였던 일제의 잔재인 정부청사 중앙청 건물은 아예 사라졌고, 70년대 팝 싱어 클리프 리처드가 공연했던 시민회관은 이제 세종문화회관으로 강고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 뒷길 내가 공부하고 청운의 뜻을 품었던 공부방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으니 공허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나의 흔적을 주위에서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 도대체 어딜 갔나? 그리고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그 자리에 대형 서점 본점이 유엔본부빌딩 마냥 우뚝 서 있다. 대규모 복합건물 속의 이 서점은 서울이 자랑하는 시민의 안식처이자 문화정보의 센터로 변모됐다. 이렇게 번잡한 광화문 거리이지만 숨통이 트인 곳은 그나마 청계천 수로다. 제법 긴 수로의 맑은 물이 양옆 큰 빌딩 숲속으로 경쾌하게 흐르고 있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

우리의 고궁,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사이에 끼어 있는 이 광화문은, 한국의 보배이자 서울의 심벌이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여러 단체들의 함성소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우리 사회의 큰 고민거리로 대두된다.

현재 우리 한국의 문제들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행동장이나 다를 바 없어 늘 씁쓸하다.

당시 젊은이들은 덕수궁 돌담길을 자주 걸었다. 그냥 조용하고 호젓한 돌담길이기 때문이다. 영문도 모르고 걸어 보았지만 거기엔 좋지 않은 징크스가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데이트 족들이 그 길을 걸으면 나중에 헤어지게 된다는 미신 같은 이야기를 말이다.

한때 나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 삼청동 하숙집에도 머문 적이 있다. 그래도 명색이 청와대가 바로 옆에 있었으니 그 기운을 조금이라도 받았을까. 경복궁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북촌이 있고 서쪽으로는 서촌이 있다. 아기자기한 한옥 골목길을 걷다보면 서울 속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에 외국관광객이 선호할 만하다.

골동품이 많이 진열되어 있는 인사동 거리를 빠져나오면 서울 중심지의 사찰 조계사가 나온다. 도시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이색적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현대 도시인들의 정신을 바르게 정진하게 하는 도량 역할을 하는 곳이어서 퍽 다행스럽다.

지하철이 없었던 그 시절 시내버스를 타고 종로를 여기저기 배회하지 않았나. 간혹 밥맛이 없으면 종로 잣죽 집을 찾아 잣죽과 찹쌀떡을 먹으면서 우리의 전통 맛을 맛보기도 했다. 또 신간서적이 보고 싶으면 바로 옆 종로서적을 찾았던 것도 생생히 기억난다.

매콤한 불 맛으로 볶음낙지를 즐겼던 무교동 낙지골목은…. 셀브르 음악다방의 낭만 콘서트는…. 영화 ‘벤허’ 도 보고 ‘졸업’도 즐겨 봤던 종로3가 극장 피카데리, 단성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거리였다. 문화의 혜택이라곤 전혀 누릴 수 없었던 그 때의 극장은 우리의 낭만을 해갈시켜 주었던 곳이지만 이제는 모두 금은 보석상회로 탈바꿈해 버렸다.

이제 나의 것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나의 흔적은 이제 어디에서 볼 수 있나? 마음속에서도 아니고 꿈길에서도 아니다. 혹여나 세종로 광화문대로 뒷골목에 아직 남아있을 한주먹 흙의 냄새에서 찾아야 하는지?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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