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손을 놓아드릴게요”
“이제 그만, 손을 놓아드릴게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1.23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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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날고 있다. 친구가 그리 많지 않던 그였지만 많은 동료들을 몰고 찾아온다. 그는 조곤조곤 속삭이던 목소리였건만 어쩐 일로 큰 소리를 내며 낮은 자세로 난다. 묘 주변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린다. 내 주변도 빙빙 돈다. 오늘도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소리에서 그의 음성을 찾으려 조용히 귀 기울인다. “솜 같은 구름이 포근한 자리를 만든다. 실 같은 바람이 따스하게 나를 감싼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맘은 하늘 위에 새처럼 날아다닌다.”

오늘도 나는 밤낮으로 달리고 있다. 어두운 그림자를 달고 무작정 내달리는 차창 밖 스산한 겨울 풍경은 어느덧 기쁨과 흥분의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또 무작정 그 안에 몸을 맡긴 채 생활하다보면 금세 외로워진다. 그를 황당하게 보내고 사랑하는 가족마저도 먼 미국으로 보낸 후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외로움에 익숙해졌지만 다른 곳에 많이 의지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젠 그럴 수 없다. 그럴 시간이 없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제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요?”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한 채 반복되는 약물복용으로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가는 그를 볼 때마다 가슴이 저몄다. 그날도 요즘 같은 겨울이었다. 첫 손자인 경민이와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환하게 웃으며 다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와 단추를 푸는 순간 어머니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그가 쓰러졌다. 마침 일요일 저녁이어서 차량통행이 원활하여 빠른 시간 내에 다시 부모님 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구급차가 도착해 있었고 이송 시에는 내가 구급차에 동승하여 그의 손을 잡고 출발하였다. 가던 중 내 손바닥에 무엇인가를 알려주려는지 빠른 속도로 써 주었으나 그 내용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요즘이면 구급차에 CCTV가 설치되어 있으니 확인할 수 있을 텐데.

‘밥이 보약’이라며 늘 같은 양의 식사를 하면서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던 건장한 체격의 그였다. 자주 찾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을 미소로 위로해 주던 그. 그러나 미소 뒤에 숨겨진 섭섭함을 애써 감추시던 그는 나의 아버지다. 룸 밀러를 통해 보이는 내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처음엔 막막하기만 했지만 시간이 흘러 이 세상에 남겨진 우리 가족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서서히 기억이 잊혀져가던 요즘 그가 자주 나타난다. 이젠 아픔도 고통도 없는 평화로운 곳에서 천상복락 누리시길 기도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멋진 찻집을 다니시던 그때처럼 살기를 간절히 원한다. 내 진심이 고스란히 아버지에게 전해지길 소원한다.

산소를 방문할 때마다 아버지는 내게로 날아온다. 그리도 집 떠나길 싫어하며 여행 한 번 않던 그는 어찌 새가 되었을까. 평소에는 말 수가 적었으나 유머와 재치가 넘치던 그는 내 곁을 가까이 돌면서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 걸까. 이승의 삶을 후회하며 자유로이 세상 구경을 하고 싶나보다. 어머니의 남은 삶을 부탁하는 지저귐일 게다. 쉴 새 없이 지저귀는 그의 맑은 소리를 알 것만 같다. 생전에 매우 다정다감한 부부는 아니었지만 그리도 여행을 좋아하던 어머니와 함께 새가 되어 이곳저곳을 다니고 싶은 마음일 게다.

새는 우리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다가도 갑자기 떼를 지어 큰소리로 지저귀며 울부짖는다. 분명히 일기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움직임이다. 굵은 빗줄기이든, 펑펑 쏟아지는 눈발이든 속히 자리를 접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몸짓이다. 그가 있는 이곳은 여유롭고 편안하며 몸으로 아버지를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천수를 다 못 누리고 69세의 나이로 손바닥에 남긴 글씨처럼 의문을 남긴 채 돌아가신 아버지. 난 막내아들이기에 그 누구보다 애달파하며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자주 찾아뵙겠노라 다짐하며 헤어지지만 우리의 현실은 모두의 마음을 배신한다. “이제 그만, 아버지 손을 놓을게요.”

<이동서 (주)젬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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