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싹쓸이 DNA’
‘공짜·싹쓸이 DNA’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2.3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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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는 ‘공짜 (선호) DNA’는 지구촌 공통의 속성이지 싶다. 우리 민족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습성이 속담으로 굳어진 시기는 잘 알지 못한다.

그래도 우리말에 ‘공(空)것’ ‘공짜’에 관한 속담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면 ‘공짜 DNA’가 우리 민족의 핏속에도 진하게 흐르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짚이는 대로 ‘우리속담풀이’, ‘속담풀이사전’ 두 가지를 살펴보니 우리네 부끄러운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공술 한 잔 보고 십리 간다.” “공것이라면 양잿물도 들고 마신다.” “공것 바라기는 무당서방 같다.” “공것이라면 마름쇠도 삼킨다.” “공것이라면 비상도 먹는다.” “공것이라면 눈도 벌겅(벌렁) 코도 벌겅(벌렁) 한다.” “공것은 써도 달다.” “공짜라면 당나귀도 잡아먹는다.” “공것이라면 자던 놈도 일어난다.” “공것이라면 초를 술이라고 해도 먹는다.” 비아냥거림이나 경구(警句) 성격의 속담도 간간이 눈에 띈다. “공짜라면 노래기 회도 먹겠다.” “공것 바라면 이마(혹은 대머리)가 벗어진다.” “공것 좋아하다가는 물린다.”

공짜에 관한 속담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가 있다. 이국땅 베트남에서 활화산처럼 일고 있는 ‘박항서 신드롬’과 무관치 않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박항서 행사’와 유관하다.

잘 알려진 대로 ‘박항서 행사’란 베트남 축구 역사를 새로 써내려간 박항서 감독에 대한 사은(謝恩)의 뜻으로 베트남 거주 한국인들이 가죽제품 업체 라까(LAKA)의 주요도시 매장을 방문하면 상품을 공짜로 주는 이벤트를 말한다. ‘원 플러스 원(1+1)’이 아닌, 상품 1개씩을 그냥 공짜로 선물하는 행사다. 이벤트의 주인공은 라까 대표 ’응우옌 딘 뜨‘ 씨 .

심상찮은 사태는 라까가 이벤트를 시작한 17일 이후부터 감지된다. 17일이라면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국가대표팀이 아세안축구연맹의 ‘스즈키컵 대회’에서 10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직후다. 이벤트 선물을 받아갈 자격은 ‘베트남에서 생활하거나 일하는 한국인’, 다시 말해 ‘장기체류 교민들’에게만 주어져 있다.

문제는 ‘공짜 DNA’로 충만한 일부 한국인 관광객들이 라까 매장에서 ‘싹쓸이 DNA’까지 과시한 데 있다. 라까 측은 이 때부터 당황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25일 오후에는 베트남 장기체류 사실을 입증하는 한국인에게만 선물을 준다는 긴급 안내문을 올리기에 이른다. 이 소식은 성탄절인 12월 25일 저녁나절 처음 매스컴을 탔다.

연합뉴스 특파원은 ‘응우옌 딘 뜨 사장이 한숨을 내쉬며 한 말’이라며 “54인승 관광버스까지 왔다”는 소식도 곁들여 전하면서 ‘공짜 선물 고르는 한국인들로 붐비는 매장’ 사진도 같이 전송했다. 현지 가이드가 흥에 겨워 한 말을 우리 관광객들이 오해라도 했는지 어땠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뒤치다꺼리가 깔끔했다는 사실이다.

일부 ‘어글리 코리언(ugly Korean)들’의 낯부끄러운 소식이 알려지면서 현지 교민들이 라까에 온정의 손길을 뻗치기 시작한 것. 다음은 27일자 속보다. “한국인 관광객이 단체로 매장에 몰려가 공짜상품을 싹쓸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지 교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뜨 사장은 ‘일부는 상품을 몇 개씩이나 구매했고 한 분은 매장 한 코너에 있는 가방을 몽땅 사주셨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매장 직원들이 감사하다는 전화를 수백 통이나 받았고, 이메일과 페이스북 계정으로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 관광객이 어려움을 겪게 해서 부끄럽고 미안하다. 한국인에게 호의를 베풀어줘 고맙다>는 메시지가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라까 스토리는 ‘어물전 망신, 꼴뚜기가 시킨’ 체면 구기는 사건이다.

이 낯 뜨거운 사건이 새해에도 재현될지 여부는 우리 국민의 염치(廉恥=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DNA와 양식(良識=건전한 식견) DNA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내뱉는 쓴 소리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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