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박사 김순권
옥수수박사 김순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2.2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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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하고 정주영 회장의 소몰이 방북(1998.6.17.), 다 제가 양쪽 오가며 뒤에서 도왔지요. 그때 정 회장이 내놓은 5억원이 ‘국제옥수수재단’의 설립 밑천이 되었고…,”

변경된 유선방송 채널을 몇 차례 돌리다 우연히 마주친 화면 속의 얼굴. 악수를 나누거나 통성명을 한 적은 없어도 매우 낯이 익은 얼굴…. 우람한 체구, 경상도 억양, 거침없는 언변의 주인공은 ‘옥수수박사’로 통하는 김순권 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72, 한동대 석좌교수)이었다.

필자가 양승룡 교수(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가 진행하는 ‘NBS(한국농업방) 초대석’에 이틀 내리 시선을 멈춘 것은 김 박사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 때문이었다. ‘옥수수 한 알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대담 프로그램에서 그는 자신을 ‘경주에서 가까운 울산의 바닷가마을에서 자랐다’고 소개했다. 나중에 뒤져본 자료에는 그의 생일이 1945년 5월 1일이고, 고향은 울산광역시’ 또는 ‘경남 울산시 강동면’이라고 나와 있었다.…그 밖의 인적사항으로 ‘울산농고(현 울산공고)’와 ‘경북대·고려대·하와이대 동문’이 시선을 끌었다.

초대석에서는 더 많은 일화가 쏟아져 나왔다. 부산상고에 낙방한 이야기,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옥수수 연구원으로 맹활약한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 놀라운 사실, 기발한 발상이 메모지를 가득 채워 갔다. ‘북한 방문 59회, 376일간!’ 이만하면 분단 이후 방북 횟수가 가장 많은 남측 인사로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다. 이 점, 본인도 시인했다.

김 박사는 자신이 북한 땅에 처음 발 디딘 시기를 ‘YS(김영삼)정권과 DJ(김대중)정권의 교체기’로, 마지막 방북 시기를 ‘MB(이명박)정권 말기’로 기억했다. 북한 방문 59회 중 3회가 개성이었고 56회가 전진기지 격인 평양이었다는 사실, 북쪽 고위층을 설득해 옥수수와 콩을 번갈아가며 심게 만든 이야기, 북한 오지에서 부인·안내원과 함께 연기를 피워가며 콩서리를 해먹던 일화까지, 그의 입심은 막힘이 없었다.

초대석 말미에는 파격적이거나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소신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지금은 세계 20개국에 도움 주는 국제적 NGO지만 국제옥수수재단 설립목적의 핵심은 남북 화해를 겨냥한 ‘북한 돕기’였습니다. 북한의 주식(主食)이나 다름없는 강냉이(옥수수)와 남한의 남아도는 쌀을 맞바꾼다면 서로가 좋고,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또 있었다. “남과 북이 사상적으로 많이 달라지긴 했어도 남북이 하나 되기 전에 양쪽 처녀총각들의 결혼을 장려한다면 그 2세로 좋은 종자 ‘슈퍼 하이브리드(super hybrid=우수한 교잡종)’가 태어날 것이 확실합니다. 70년 이산(離散)의 아픔을 보상하고도 남을 거고요. 또 북에서 옥수수 신품종 종자를 중국에 수출한다면 북한 스스로도 일어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

사실 50년이나 한 우물만 파 온 김순권 박사. 그는 옥수수 하나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다음 옥수수 우량종자를 다수 개발해낸 세계적 권위, 세계적 신화의 육종(育種)학자다. 아프리카 옥수수 품종개량 17년의 산 기록인 <검은 대륙의 옥수수 추장(1998 출간)>이란 저서도 세상의 빛을 거저 본 것이 아니다.

그는 요즘도 꾸준히 ‘바이오 옥수수’ 개발에 목을 매고 있다. “생것으로 먹어도 되는 ‘꿀옥수수’, 다량의 안토시아닌이 들어있어 제2차당뇨 치료효과가 입증된 ‘검정옥수수’도 최근에 개발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옥수숫대에서 휘발유 뽑아내는 연구도 한창이고…,”

울산이 낳은 옥수수박사 김순권. 대담 사회를 맡은 양승룡 교수가 다음 몇 마디로 이날(12,21~22 방영)의 대담을 간추렸다. “남북 평화모드가 급물살을 타는 이 시점, 김 박사님의 역할에 그 어느 때보다 무게감이 실리고 있습니다.“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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