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각, 같은 도시에 사는 다니엘(알바로 구에레로)은 와이프와 두 딸을 버리고 유명 배우이자 내연녀였던 발레리아(고야 톨레도)와 동거를 시작한다. 처음엔 좋았다. 둘은 서로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얼마 뒤 발레리아는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다. 다시 걸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 다니엘의 극진한 간호 속에서도 둘의 관계는 점차 틀어지기 시작한다. 발레리아에게는 리치라는 부티 나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지만 교통사고 이후 실종된다. 그 일로 발레리아와 다니엘의 관계는 더욱 나빠진다.
그 도시에는 엘 치보(에밀리오 에체바리아)라는 살인청부업자도 살고 있었다. 노숙자 행세를 하면서 그는 버려진 개들을 키우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엘 치보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과거 와이프와 딸을 버리고 공산주의 게릴라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수년간의 감옥생활을 하면서 삶에 회의를 느껴 지금 살인청부업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어느 날 우연히 전처의 죽음을 알게 된 엘 치보는 딸인 마루를 다시 찾게 되고 그녀 주위를 맴돌게 된다.
옥타비오와 수잔나, 다니엘과 발레리아, 엘 치보와 마루는 서로 모르는 커플들이지만 옥타비오와 발레리아, 엘 치보는 발레리아의 교통사고 현장에 함께 있게 된다. 옥타비오가 도주하다 발레리아의 차를 박아버렸고, 그 사고 현장에 엘 치보는 행인으로 가까이 있었던 것. 서로를 전혀 몰랐지만 그들 모두 개와 함께 있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제목인 아모레스 페로스의 뜻은 ‘개 같은 사랑’이다.
사랑은 개 같다. 그 이름만 들어도 설레고 아름답지만 그 뒤에는 늘 배신과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 사랑으로 상처받은 이에게 사랑은 개 같아진다. 욕도 나오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짐도 한다. 영화 속에서 옥타비오가 그러했다. 형수인 수잔나에게 모든 걸 다 줬지만 끝내 그녀를 얻지 못한다.
사랑은 또 개 같다. 이기적일 때가 있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에게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얼핏 이타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랑하다 힘들어지면 상대방에게 개 같이 짖는다. 막말은 기본, 그런데도 화해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잘해준다. 거의 광견(미친개) 수준이다. 영화 속에서 다니엘과 발레리아도 그랬다. 미친개처럼 서로를 향해 짖는다. 그러고 보면 사랑이란 상대방을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에 빠져 행복한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사랑은 진짜 개 같다. 희망을 준다. 욕으로 사용되는 등 개는 인간에 의해 자주 천대받지만 인간에게 개란 존재는 그렇게 막대할 군번이 아니다. 개만큼 충직하고 이타적인 동물이 또 있을까. 개는 주인이 부자든, 가난하든, 똑똑하든, 바보든 당신이 마음을 열면 모든 걸 준다. 결코 배신하는 일이 없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한결 같은 개는 늘 위로와 희망이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 배신과 상처가 도사리고, 이기적일 때도 있지만 인간은 결국 사랑 때문에 산다. 사랑하며 상처받지만 다시 사랑 때문에 희망을 얻게 된다. 이 영화에서처럼 인간 곁에는 늘 개가 있듯이 사랑도 늘 우리 곁에 있다. 다만 찾으려 하지 않을 뿐. 영화 속에서 엘 치보도 버려진 개들을 키우면서 딸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희망을 다시 찾게 됐다.
비록 사랑의 상처로 지금 당장은 아파도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반드시 추억이라는 보석을 잉태하기 마련. 그 시간을 사랑을 하지 않고 보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그래서 지나고 나면 안다. 할 때는 아무리 ‘개 같은 사랑’이었다 해도 결국엔 ‘개감동’이 된다는 것을.
2001년 11월 7일 개봉. 러닝타임 153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