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도록 아름다운-‘비우티풀’’
슬프도록 아름다운-‘비우티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29 21: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비우티풀' 한 장면.
영화 '비우티풀' 한 장면.

 

살다 보면 가끔 사는 게 시궁창 같을 때가 있다. 아니, 사실 어른이 되면 삶은 쉽게 엉망이 되곤 한다.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건 잘 없고, 이젠 모든 게 익숙해 신기함이라곤 사라진 무미건조한 일상은 차라리 짐이다. 그나마 새로운 거라곤 쾌락 뿐, 허나 그것도 영원하지 않아 결국은 고통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다. 행복은 1톤을 가져도 늘 부족하고, 고통은 단 1그램에도 다들 몸서리친다. 그 1그램만으로도 삶은 쉽게 시궁창으로 변하곤 한다.

돈이 많으면 좀 낫다. 하지만 돈은 점착력이 지나치게 강하다. 늘 있는 사람들에게 더 달라붙는다. 없는 사람들은 늘 없다. 하지만 없는 사람들에게 삶이 진짜 심각한 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악의 태클에 손쓸 도리가 별로 없다는 것. 큰 병에 걸리면 그냥 죽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뭐. 혼자 죽는 것까진 괜찮다. 스스로 받아들이면 되니. 하지만 혼자가 아닐 땐 큰일이다. 그 죽음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땐 슬픔을 떠나 미쳐버릴 수밖에 없다. 이건 슬픈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실제 우리들 삶이다. 어떤 이들에게 그분(神)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도무지 사정이라곤 봐주지 않는다. 지옥이 따로 없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비우티풀>에서 주인공 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의 삶이 그러했다.

멕시코에 사는 욱스발은 마약을 사고팔고 밀입국자들을 짝퉁가방 공장에 알선하는 인력브로커다. 그에겐 아내와 어린 남매가 있었다. 하지만 아내인 마람브라(마리셀 알바레즈)는 심각한 조울증 환자다. 게다가 지금 자신의 친형이랑 바람이 난 상태다. 해서 욱스발은 아내를 떠나 혼자서 어린 남매를 키우고 있다. 착한 어린 남매는 욱스발이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 욱스발에겐 죽은 자와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니까 영매다.

그런 어느 날, 고질병이 도져 찾아간 병원에서 그는 암 진단을 받게 된다. 남은 시간이라곤 고작 석 달. 험한 세상에 남겨질 아이들에게 그래도 아름다운 세상을 선물하고 싶었던 욱스발은 그 때부터 신변을 정리하면서 아이들에게 줄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비우티풀>은 주인공 욱스발을 통해 삶이라는 지옥의 끝을 보여준다. 하지만 욱스발이 아니라도 화면 가득히 그려지는 세상은 차라리 지옥에 가깝다. 길거리에서 쓸쓸하게 죽어가는 노숙자, 시궁창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중국인 불법 체류자들, 그에 못지않은 욱스발의 허름한 집, 마침내 그의 오줌에 섞여 나오는 피까지. 그 속에서 밝은 거라곤 딱 하나밖에 없다. 아직은 천진난만한 어린 남매의 표정. 참 하나 더 있긴 하다. 욱스발의 아내인 마람브라 집 스탠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선이 있었지. 그녀는 자신의 조울증을 고치기 위해 최근에 광선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빛은 밝아서 오히려 슬펐다. 임시방편의 가식적이고 인위적이었다. 그 빛으로 잠시 나아지는 듯했지만 다시 엉망진창이 된 마람브라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에게 충실하고 싶어. 하지만 즐기고 싶기도 해. 창녀처럼.” 이 영화에서 마람브라의 조울증은 우리들 삶을 투영하고 있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변덕스런 삶. 그래서 누구든 제 정신으로 살기 힘든. 일찍이 천재 시인 랭보도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아 삶은 지옥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삶이 아무리 지옥이라도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 한 가지만 있어도 살아진다. 욱스발에게는 그게 어린 남매였고, 죽음을 앞두고 더욱 짙어지는 지옥도 속에서도 그는 어린 남매와 맞잡은 손을 결코 놓지 않으려 한다. 끝까지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다.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하면서 욱스발이 아이들을 걱정하자 같은 영매인 비아(안나 와게너)가 말한다. “아이들을 돌 볼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해? 우주가 그들을 길러낼 거야.” 하지만 그녀의 말에 욱스발은 다시 이렇게 대답한다. “하지만 그 우주가 집세를 내주진 않잖아요.”

그런데 잠시 후 진짜 우주가 도와준다. 얼마 전에 본 <마카담 스토리>라는 영화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모든 어둠 뒤에는 언제나 위대한 빛이 있어요.”

아무리 삶이 시궁창이라도 희망은 어디선가 늘 살아 숨 쉬기 마련. 이 영화도 그렇다. 시궁창처럼 지저분하고 안쓰러운 화면들이 다 지나고 나면 가장 아름다운 빛이 기다린다.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오롯이 아름다운 ‘뷰티풀’이 아니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비우티풀’이었다.

2011년 10월 13일 개봉. 러닝타임 148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