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영칼럼]보헤미안 랩소디 단상(斷想)
[전재영칼럼]보헤미안 랩소디 단상(斷想)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28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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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국의 전설적인 록큰롤그룹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자전적 음악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인기리에 상영 중이다. 퀸의 전성기 시절에 10대와 20대를 보낸 필자는 한동안 잊고 있던 퀸의 음악을 오랜만에 들으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퀸의 대표곡이자 상영 중인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보헤미안 랩소디의 ‘보헤미아’는 체코의 서쪽 지방을 일컫는 말이다. 체코 여행을 가면 꼭 들르게 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 ‘체스키크룸로프’와 황금빛깔의 라거맥주 필스너로 유명한 ‘플젠’ 등이 보헤미아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들이다. 낭만 혹은 방랑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보헤미안’이라는 말은 중세시절부터 보헤미아 지방에 유랑민족인 집시가 많이 살고 있는 데 착안, 15세기경부터 이들을 프랑스인이 ‘보헤미안’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에는 사회적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보헤미안’이란 단어와 함께 꼭 등장하는 단어가 ‘히피’이다. 이 단어들은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휩쓴 반전운동 혹은 청년운동의 화두에 해당하는 단어들이다.

1960년 중후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실망과 흑인 인권운동 등 불안한 사회의 영향으로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고 실의에 빠져들면서 기존 사회질서를 부정하고,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고,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에 무게를 두는 운동이 미국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히피이즘’이다. 이 세대를 ‘비트(beat) 세대’ 혹은 ‘비트닉’이라 부르는데, 비트닉의 주류는 보헤미안적 성향을 지닌 사회반항적 문학청년들이었다. 비트닉의 젊은 작가들은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자유를 숭배했는데, 점점 요란한 패션과 약물문화, 자유와 평화의 사상이 합쳐지면서 히피 문화가 도래하게 된다.

히피 혹은 보헤미안적 사상과 행동은 당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의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전 세계적으로 반전과 반정부 운동과 같은 청년 운동을 유행시켰다. 저항문학으로 시작하여 패션으로, 로큰롤 혹은 포크송 같은 음악으로 전 세계의 젊은이를 사로잡으며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지구촌을 강타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격렬했던 학생운동의 상당부분이 이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필자도 히피 혹은 보헤미안 문화의 끝물을 먹으며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긴 장발에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독재정권과 매판자본에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메케한 최루가스에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돌을 던지기도 하고 김민기, 한대수, 밥 딜런, 존 바에즈의 저항가요를 따라 부르며 청춘의 뒷장을 넘기던 시절이었다. 고백컨대, 당시에는 퀸과 퀸의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나와는 음악적 성향도 맞지 않았고, 특히 리드보컬인 프레디 머큐리가 탐탁하지 않아서였다. 당시로서는 당연히 금기시되었던 동성애자에 에이즈 환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이순(耳順) 가까운 나이가 되니 다소 이해의 폭이 넓어진 건지 사고가 무뎌진 건지, 프레디 머큐리에 대해서도 동정과 연민의 염(念)이 생긴다. 본명이 ‘파로크 불사라’인 프레디 머큐리는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파르시 출신이다.

‘파르시’는 고대 페르시아 왕국 혹은 페르시아 사람을 뜻하는데, 지금도 이란인들은 스스로를 파르시라고 부른다. 프레디 머큐리의 조상은 고대부터 내려오는 고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인도로 이주해 살다가 1964년 영국령에서 탄자니아로 독립한 아프리카 옆에 붙은 인도양의 섬 잔지바르를 거쳐, 프레디 머큐리가 10대 때 영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프레디 집안은 이란에서도, 인도에서도, 잔지바르에서도, 영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떠돌이 집시 같은 존재였고, 프레디 머큐리도 영국에서 ‘파키 보이(파키스탄 꼬마)’로 불리며 멸시의 대상이었다. 이런 환경이 기존 사회의 규범과 문화를 질타하는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명곡이 탄생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우리나라에도 프레디 머큐리 같은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이 많다.

최근에는 신생아 20명 중에 1명이 다문화가정의 아이라고 한다. 과연 이들이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차별 없이 우리 국민으로 잘 적응하는지,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얼마 전에 다문화가정 중학생 소년이 친구들의 폭력을 못 이겨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사한 사건이 있었다. 채 피지도 못한 소년의 죽음과 보헤미안 랩소디가 함께 투영되는 심란한 11월 말이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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