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복 동상
이승복 동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07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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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소년 이승복 동상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지난 5일 간부회의에서 이를 언급하며 철거를 검토하라고 주문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부터이다.

그런데 이에 일부 보수진영이 반발하며 보수와 혁신의 이념 대결구도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노 교육감은 이승복 동상을 철거해야 할 이유로 시대에 맞지 않다는 점과 사실관계도 맞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일부 보수진영에서는 노 교육감의 이력을 나열하면서까지 색깔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승복 동상을 철거하려는 교육감의 안보관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승복은 냉전시대에 침투한 무장공비에 의해 희생돼 반공의 아이콘으로 부각된 인물이다. 강원도 산골 화전민 마을에 들이닥친 공비들에게 당시 초등학교 2년생이었던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니 훌륭한 반공교육의 소재로 활용되기에 충분했다.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은 연합군을 귀축미영(鬼畜米英), 즉 ‘귀신과 짐승 같은 미국과 영국’이라고 표현했다. 국민의 적개심을 최고조로 조성해 전시총동원 체제를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냉전시기 우리의 반공교육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과서 삽화에는 공산당과 북한군이 뿔 달린 짐승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한 마디로 공산당은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것이었다.

유신이 선포된 이후에는 초등학교에서 체육시간에 질서운동을 가르치기도 했다. 질서운동이란 다름 아닌 군대의 제식훈련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어린이들에게 ‘앞으로 가’, ‘뒤로 돌아 가’ 등의 구령을 내렸다. 어린이들은 마치 병사들처럼 그 구령에 따랐다.

제식훈련은 군대의 가장 기본적인 훈련이다. 명령에 절대로 복종하는 군인정신을 주입하기 위한 훈련이다. 그런 군인정신을 어린이들에게까지 교육하던 시절이었다. 임전무퇴(臨戰無退)의 화신인 화랑 관창의 일화도 자주 인용됐다. 이승복은 공비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이들은 공산군의 잔혹함에 몸을 떨어야 했다. 그리고 용감하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친 이승복의 반공정신을 본받아야 했다.

전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이승복을 기념하는 웅변대회와 글짓기 등 행사가 진행됐다. 운동장에는 이승복 동상도 세워졌다.

울산 태화초등학교 교정의 ‘반공소년 이승복상’은 1978년 12월 31일 건립된 것으로 표식이 돼 있다. 이 학교 육성회 임원의 기부로 당시 학교장이 건립한 것이다. 1989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초청으로 방북했던 소설가 황석영은 북한방문기를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평양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가 당시에는 독자들의 감성에 충격파를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이승복 동상 철거 논란’이 불거지자 맨 먼저 이승복 일화의 사실성을 부각하는 목소리가 높이 나왔다. 관련 대법원 판례도 제시됐다.

그러나 사실성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21세기 어린이들에게 냉전시기의 반공교육을 그대로 시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적개심으로 무장시켜 반공전쟁에 투입할 용사로 키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한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교육이 필요한 시기는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초등학교 운동장에 이승복 동상이 그대로 서 있어야 하는 지, 철거를 해야 하는 지가 명쾌하게 보일 것이다.

강귀일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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