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생각해보는 석과불식(碩果不食)
11월에 생각해보는 석과불식(碩果不食)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1.01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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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1월이다. 올해의 종점을 향해 부단히 달려온 시간들이 화살처럼 지나갔다. 무엇하나 제대로 이뤄 놓은 것 없이 한해를 다 허비해 버린 것은 아마도 무계획과 무절제의 소산인가 보다.

초겨울의 쌀쌀함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황량한 가을들판은 이미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알린다. 아직은 모든 게 미완이지만 그래도 한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한 준비는 해야 한다.

연말이면 언제나 한해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를 고민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비슷했다. 벌써 산간지방에는 찬 서리가 내렸고 조만간 눈도 내릴 것이라는 엄연한 자연의 순리 앞에 순응하며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주역에 나오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앙상하게 뼈대가 드러난 나무의 가지 끝에서 빛나는 가장 크고 탐스러운 씨 과실은 한 개에 불과하더라도 희망이다. 그 속에 박혀있는 씨는 이듬해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말은 희망의 언어이다.

그래서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욕심을 억제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을 나눠 준다는 뜻이 들어있다.

옛 사람들은 과일을 딸 때 모두 다 따지 않았다. 몇 알은 반드시 남겨 소위 까치밥이라 해 새들의 먹이가 되게 했다. 벼도 마지막 끝 부분은 베지 않고 남겨 두어 가난한 이들의 식량이 되게 했다. 현실에서 분쟁은 이익을 독점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익을 독점하려 하다보니 전쟁이 생기고 우리 사는 세상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것이다. 이익을 남과 더불어 나누려 하지 않는데 그 원인이 있다.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의 경제구조로는 인정과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일인백보(一人百步)보다 백인일보(百人一步)가 더 아름답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치열한 경쟁에 내 몰려 있다. 성과급이란 말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다. 같은 직장 같은 급수의 동료라도 능력에 따라 성과급이 다르다.

달리기 하다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함께 달려와 입상하지 못한 학생을 장한 학생이라고 칭찬하던 시대는 지났다. 한 발짝이라도 남보다 더 앞서려 한다. 그러다 보니 자의든 타의든 때로 남을 밀치게 되고 쓰러져도 그를 일으켜 세우기보다 딛고 넘어서야 하는 세상이 됐다. 맹자(孟子)가 가장 경계한 것이 저 마다 이(利)를 다투어 싸우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맹자가 가장 혐오한 이익 중심의 경쟁사회가 됐다.

이순신 장군이 만약 지금 태어났다면 백의종군(白衣從軍)이 가능했겠는가? 예(禮)와 충(忠)과 의리(義理)를 목숨같이 숭상하던 시대에도 갖은 수모를 다 당했는데 아마 지금 태어났다면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왕따를 당해 싹이 커 보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 정치적으로 문란한 작금의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 석과불식(碩果不食)이 아닐까 싶다. 나보다는 남을 위해 까치밥을 남기던 선인들의 인정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큰 과일을 욕심내어 남이 먹을 새라 다 먹어치워 버리기 보다는 그래도 정말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나보다 약한 그 누군가를 위해 최소한을 남길 줄 아는 희생과 양보가 절실하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현실과 늘어만 가는 청년실업자들을 위한 사랑과 배려가 석과불식(碩果不食)이다. 남을 위해 베풀고 남길 줄 아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이주복 편집이사 겸 경영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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