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 파면 이유는 인간의 갑질
염라대왕 파면 이유는 인간의 갑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10.31 23: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염라국 신문에 "갑(甲)질 지옥 창조한 인류, 염라대왕 파면"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떴다. 인류가 지구를 갑질 지옥으로 만들고, 옥황상제가 염라대왕에게 지옥 관리 책임을 물어 파면했다는 뉴스다. 댓글 중에는 "하필 그 아름다운 지구를 지옥으로 만들다니 바보네"가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았다. 이 외에도 "멀지 않아 인간이 조물주가 될지도 모르겠네"라면서 인간의 능력을 두려워하는 댓글도 있었다. 혹 가짜뉴스가 아닌지 팩트 체크를 해볼까 한다.

인류의 능력은 천리안의 신통으로 하늘을 날고 빛으로 먼 곳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사이보그를 만들더니 어느새 화려한 지옥도 만들었다. 과거 인류가 보기엔 현재 인류는 신에 버금가는 능력으로 살고 있는지는 몰라도 예나 지금이나 행복은 ‘거기가 거기’인 듯하다. 행복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며 지역, 문화, 생활양식, 종교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행복은 ‘이 순간 나와 관계있는 사람’과의 비교에 의해 대부분 결정된다. 비교는 우열을 낳고 우열이 욕망을 만나 돈, 명예, 권력을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자칫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갑질'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가끔 성인(聖人)들이 나타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가르쳐주지만, 가진 것을 이용해 평등을 무너뜨리며 즐거워하는 자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없는 자들을 가리켜 게으르거나 머리가 나쁘거나 신체적 능력이 부족하거나 부모를 잘못 만나 그렇다거나 전생에 죄를 지어 그렇다는 등 현실을 받아들이라 한다. 이렇게 갑(甲)이 등장하면서 소수임에도 다수의 을(乙)을 휘두를 수 있는 현실이 팩트다.

없는 자는 가진 자의 갑질을 견디다 못해 간혹 반발도 해보지만 대부분 무력감만 느끼고 만다. 오히려 당연시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도 가진 자의 반열에 올라서려고 갑질을 부러워하다가 오히려 갑질을 되갚아 주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삼기도 한다. 반복되는 갑질에 다쳐 아물지 않는 상처를 훈장처럼 달고 살다가 을이 과거의 갑에게 복수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미투(MeToo)를 보니 사회공동체 문제임이 틀림없다.

어쩌면 재벌과 권력자의 갑질만이 갑질이 아니고 모두에게 공통된 갑질도 천태만상이다. 하잘 것 없는 외모와 행동으로 하는 신체 갑질, 얄팍한 지식으로 하는 잘난척 갑질, 힘이나 모욕적인 말로 하는 억지 갑질, 나잇살로 하는 연륜 갑질 등이 있다. 또 직장에서는 사장 갑질을 욕하다가도 돌아서면 동료나 부하직원에게 업무상 갑질을 가한다. 소비자를 왕으로 모시겠다고 했더니 또 철없는 소비자가 막무가내 갑질을 하기도 한다. 하물며 부모 자식 간에도 갑질은 많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도처에서 갑질의 함정 속에서 살고 있다.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도 서열 갑질을 하는 우리는 인생의 전반에 걸쳐 누구나 갑이 되려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이 하는 갑질은 갑질이라 자각하기 어렵고, 자각하고 있어도 즐기거나 어떤 방식으로든지 합리화하려고 한다. 어떻게 합리화하든지 갑질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기에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평등은 이상 속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현실에서는 무언가를 원하는 자와 줄 수 있는 자가 공존하기 마련이다. 갑질 없는 세상은 원하는 것이 없어져야 가능하다. 갑질을 멈출 수 없는 지금 지구는 분명 갑질 지옥이다. 물론 염라국 신문은 없다. 또 염라국 뉴스는 가상뉴스지만 적어도 가짜뉴스는 아니다, 비록 여기가 갑질 지옥이라도 분명히 행복은 주변에 널려있다. 단지 내 주위의 행복을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마음을 내려놓으면 그 순간 행복이 보이기 시작한다.

홍성희 오에스테크 대표이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